중국 환관(宦官)의 역사

배재신문l등록2016.11.19 14:14l승인2016.11.19 14:1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요새 들어 ‘환관(宦官)정치’로 떠들썩하다. ‘宦’의 의미를 살펴보면, ‘宀’과 ‘臣’ 두 글자로 이뤄진 회의문자다. ‘宀(면)’은 집을 의미하는데, 그 원 뜻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라는 뜻이며, ‘臣(신)’은 ‘전쟁에서 포획해온 노예’를 의미한다. 따라서 ‘宦’은 ‘신을 섬기는 노예’를 뜻한다. 성경에도 천국을 위해 거세된 자가 있다고 하였고(마태복음 19:12), 고대 그리스, 로마나 페르시아에서도 환관의 기록이 남아있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宦官’의 사전적 의미는 ‘권력의 그늘 아래 사역하던 거세된 남성’을 말하며, 최근에는 ‘국정을 농단하는 권력자의 측근’, 즉 간신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의 환관(宦官)에 관한 역사는 주(周)나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환관은 황제, 군주 및 그 가족들의 시중을 드는 관리로 선진(先秦)시기나 서한(西漢)시기까지도 모든 환관이 거세한 것은 아니었다. 동한(東漢)이후 모든 환관이 거세였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태감(太監), 내시(內侍) 등으로 불리며 대부분 조정의 허드렛일을 책임지고 원칙적으로는 국가정무에 참여하지 않았다. 진한(秦漢) 시기 이후 봉건 전제주의가 강화되면서 명나라 시기엔 환관의 수가 10만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회자되는 환관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환관은 주인으로부터 개, 돼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최하위 계층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환관 중에도 걸출한 인재는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동한(東漢)시기의 채륜(蔡倫)을 들 수 있다. 제지술을 발전시킨 채륜은 세계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다. 정화(鄭和)는 세계 최대 함대를 이끌고 명나라의 위세를 널리 알렸다. 당나라 고력사(高力士)는 충성스럽고 전략적인 면모를 지닌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환관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환관은 황제와 가까운 관계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한 사례가 많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로 회자되는 조고(趙高), 매관매직을 제도화하여 재물을 축적한 환관집단 ‘십상시(十常侍)’의 대표 장양(張讓), 오랜 기간 병권을 장악하고 환관으로는 유일하게 왕으로 책봉되는 등 중국 역대 “최고, 최장, 최대” 기록 보유자 동관(童貫)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환관의 면면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중국 고대사회를 분탕질하던 그들의 환관 시조(始祖)들과 견주어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다만 일세를 풍미한 시조(始祖)들의 초라했던 최후의 모습과는 다를 것 같아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중국학과 이혁구 교수>

 


배재신문  pcnews@pcu.ac.kr
<저작권자 © 배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배재신문
  • "우리는 뉴스를 만듭니다"
    배재신문은 건전한 학내여론의 창달 및 보다 나은 면학 분위기 조성과 대학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7년 11월 창간됐다.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배재로 155-40 (도마동) 백산관 307호
대표전화 : 042)520-5265~6  |  발행인 : 김영호  |  주간 : 박윤기  |  편집국장 : 류보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영
Copyright © 2019 배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