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 대학, 촛불

배재신문l등록2017.04.14 11:12l승인2017.04.14 11:1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헌법재판소는, 아니 4개월 넘도록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들었던 국민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하였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법과 원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법은 헌법과 법률임이 명백하지만 원칙은 보편타당한 원칙이 아니라 자기만의 소신이나 고집이었던 것 같다. 그가 탄핵될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 보인 모습에 비추어보건대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것은 법과 원칙이 충돌할 때에는 언제나 원칙을 따르겠다는 것, 따라서 원칙 앞에서 법은 위반 또는 무시될 수 있다는 것, 요컨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법치주의의 부정이었다.

 이런 ‘법과 원칙’ 담론은 비단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사를 불문하고 각급 기관의 기관장이 취임할 때면 으레 ‘법과 원칙’을 언급하고, 대학 등 각급 학교의 장이 취임할 때에도 역시 법과 원칙이 강조된다. 그러면 이들이 말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로 해당 기관이나 학교의 규정들(정관, 학칙 등)이다. 즉 이들은 ‘규정과 원칙에 따른 경영’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도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일이 발생한다. 규정보다 기관장(학교장) 자신의 원칙이 우선하며 결국 이들은 자신만의 원칙을 내세워 규정을 무시한 채 기관(학교)을 운영하는 것이다. 차이점은, 국가에는 탄핵 등의 절차를 통하여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 반면 이들 기관에는 그러한 장치마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기관에서는 구성원의 역할이 극도로 중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역할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구성원의 비판 등 적극적인 의견 표현과 직접적인 행동 없이는, 원칙을 빙자한 규정 무시와 독단 경영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국가에서든 기관(학교)에서든 어떤 식으로라도 권력을 휘두를 지위에 있는 자라면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오로지 법뿐이라는 점이다. 법이야말로 당대의 가장 상식적인 원칙들 중 최대공약수를 문서화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만의) 원칙은 오로지 법의 적용을 받는 개인들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법이 아닌 원칙을 따른 데 대한 책임을 스스로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권력자는 법이 아니라 원칙에 따른 데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의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원칙을 빙자하여 법치를 파괴하게 되면, 권력자에게는 관대하지만 피치자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가 판을 치고 그 결과 자의와 차별이 횡행한다. 이러한 차별은 법에 대한 신뢰를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리고, 근대 이래 국가작용의 기본원리로 자리 잡은 ‘법의 지배’ 원칙은 물론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법에 대한 신뢰가 없는 세상에서는 적나라한 폭력과 힘만이 난무하게 마련이고, 이제 법이 아니라 힘이 정의가 된다. 공동체는 무너지고 구성원들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파탄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진리탐구의 요람이라 불리던 대학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혹시 법에 따라야 할 권력자들이 자기들만의 원칙을 내세워 법을 무시한 결과는 아닐까? 대학내 권력서열의 상급자들이 하급자에 대하여 법(규정)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자신만의 원칙을 내세워 군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대학 내에서 권력서열의 최하층에 있는 학생들이 대학 재정의 절대적 부분을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운영에 관하여 거의 아무런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심지어 각급 학생회조차도 학생들 위에 군림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 누가, 어떻게 이를 막고 또 바로잡을 것인가? 고금동서를 통틀어 증명된 불변의 진리는 권력자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나서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헌법 유린에 맞서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거리에서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 들고 그토록 추웠던 겨울밤들을 보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대학에도 촛불이 필요하다. 크고 작은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당당히 비판할 줄 아는 학생과 원칙을 빙자한 권력자의 법치 파괴에 감연히 맞서는 교수, 이들이야말로 어둠에 싸인 대학을 밝힐 촛불이다. 우리 함께 촛불이 되지 않겠는가?

                                                        <공무원법학과 김종서 교수>


배재신문  pcnews@pcu.ac.kr
<저작권자 © 배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배재신문
  • "우리는 뉴스를 만듭니다"
    배재신문은 건전한 학내여론의 창달 및 보다 나은 면학 분위기 조성과 대학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7년 11월 창간됐다.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배재로 155-40 (도마동) 백산관 307호
대표전화 : 042)520-5265~6  |  발행인 : 김영호  |  주간 : 박윤기  |  편집국장 : 류보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영
Copyright © 2019 배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