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다리 밀담,’ 모든 것은 언어에 있다.

배재신문l등록2018.04.30 02:05l승인2018.04.30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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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라 캐더의 『좋은 이웃, 로시츠키 영감』에서 아내인 메리는 병원에 다녀온 로시츠키 영감에게 자기들만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검진의 결과를 묻는다. 그들은 체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1세대로 의당 익숙한 언어는 체코어이다. 그녀가 영어로 묻는 이유를 남편은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체코어로 묻지 못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듣는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체코어로 말해야 하는 남편의 감정을 먼저 헤아려서일 수도 있다. 그들이 영어로 이야기할 때 부부는 심장병과 같은 나쁜 병명에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즉 그들은 영어를 통해 감정이 없는 사실만을 전달할 수 있다. 반면 그들에게 체코어는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 그것은 체코어가 그들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의사전달의 매개체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언어에는 공통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정서가 있다. 따라서 같은 언어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혈관이자 정서를 공유하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이다.

 그제(4.27) 문재인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우리말로 대화했다. 그들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그간의 정전상태에서 그야말로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났고 1953년 7월 27일 전쟁을 일시 멈추는 정전선언이 있었고 이후 70년 가까이 휴전상태가 지속되어져왔다.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종전이 선포된다면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후 실로 65년 만이다. 국가에서는 평화협정으로의 체결을 구상하고 있으며 이는 전 국민이 바라는 바이다. 문재인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파란색이 칠해진 도보다리에서 30분간 독대했다. 이들 사이에는 흔히 정상간 회담에서 늘 배석하게 되는 통역사도 없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마음을 이야기했고 진심을 전달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들은 취재진들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 사이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의 CNN과 일본의 NHK는 도보다리 위에서의 두 정상의 모습을 포착했다.

 전 세계가 판문점회담에 주목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이 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원했다. 비핵화란 더 이상 핵실험을 포기하는 것 이외에 기존의 핵무기를 철저히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트럼프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는 작고 뚱뚱한 “꼬마 로켓맨”이니 늙다리 미치광이인 “도타드”라는 폄훼적인 언어로 설전을 주고받았다. 설전이 실전으로 악화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야말로 언어를 통한 설전이 실전보다 더 폭력적인 양상을 낳았다. 남북 간 정상회담이 있었고 이제 곧 북미정상화담도 있을 예정이다. 남북 간 지도자는 언어를 통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의 근거리 주변에는 취재원도 없었고 수행원도 없었다. 통역사조차 불필요했다. 회담은 대개 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명이 모여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도보다리 밀담’이라는 MBC 뉴스데스크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다리 위에서의 대화는 온전히 둘 만의 것이 되었다.

 두 정상 간 둘만의 밀담은 특별했다. 이들의 만남은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러기에 낯선 현실이었다. 그야말로 허구보다 현실이 더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허구보다 더 낯선 이들의 만남이 주고받은 대화가 도보다리 위에서의 밀담이 평화로운 미래를 담보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공통된 언어에 있다. 동일한 언어이기에 비록 3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통역을 거친 정제된 언어가 아니었기에 진심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을 터이고 마음을 더 많이 담아낼 수도 있었을 터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소리 없는 그들만의 도보다리 밀담”에 CNN과 NHK 등 외신들이 왜 그렇게 주목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동일한 언어이기 때문에만 가능한 둘 만의 밀담이 얼마나 큰 의미로 확산될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소리 없는 대화를 포착했고 장시간 무성의 그 장면을 보도한 것이다.

 소설에서 허구적 이야기는 “현실을 앞서가지만 때로는 현실이 이미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캐나다의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무력충돌을 불안해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벗어나 전 세계의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제 판문점회담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협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로써 남과 북이 서로 부흥할 수 있는 상호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활발해진다면 허구인 소설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그러한 일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과연 지금의 현실은 소설의 상상적인 이야기보다 더 우리를 앞서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보다리가 ‘도보다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유엔군사령부에서 부르던 ‘Foot Bridge’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리가 온통 파란색인 이유는 파란색이 유엔의 색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우리정부는 ‘도보다리 밀담’ 후 보고한 브리핑을 통해 “이제부터 도보 다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슬로건인 ‘평화, 새로운 시작’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역사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번 남북한 정상들의 역사적인 만남과 회담으로 그리고 그들이 나눈 대화와 언어로 인해 우리 모두는 평화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공유한 언어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혈관이자 이심전심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이었기를 희망한다. 도보다리는 그 색상으로 인해 ‘블루브리지’Blue Bridge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파란 색은 남과 북이 하나 된 한반도기의 색상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파란색의 한반도기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이듯이 하루빨리 우리도 하나가 되기를 꿈꿔본다. 도보다리에 내포된 의미대로 남과 북의 국민들이 도보로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언어에 있다.

 

                                                       <영어영문학과 박윤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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