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가 있었다. 촛불을 든 이른바 촛불집회였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른바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가면이었다. 2013년 11월 영국의 남동부 해변도시인 브로드스테어스에 머문 적이 있었다. 작은 도시였지만 흰 절벽과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소설가 찰스 디킨즈의 흔적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었다. 11월 5일 늦은 밤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어두운 하늘은 불꽃으로 밝게 빛났다. 그 시간이면 런던처럼 대도시조차 쥐죽은 듯 조용한 영국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영국전체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또 이때만큼은 그런 소음에 영국인 모두가 관대했다. 그것은 가이 포크스의 왕에 대한 암살의 시도가 실패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개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톨릭 신자와 재혼한 어머니의 영향 등으로 이른바 가톨릭교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가톨릭국가였던 스페인을 도와 개신교국인 네덜란드에 맞서 싸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영국국교회를 지원한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새롭게 왕이 된 제임스 1세 역시 가톨릭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가톨릭교도였던 메리여왕의 아들이 가톨릭교에 비우호적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상실감을 주었다. 이에 가이 포크스는 의회건물을 폭파시켜 제임스 1세를 날려버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발각되었고 의회건물 지하실에서 체포되었다. 1605년 11월 4일이었고 엄청난 양의 화약이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준비해놓은 화약은 지하실의 습기로 축축해져 실제로 폭발이 일어났을지는 의문이란다. 어쨌든 그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끔찍한 고초를 당한 후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제임스 왕이 무사하게 된 11월 5일을 기념해 화약을 터뜨리는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가이 포크스의 인형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조롱하다가 불태워버리면서 놀이는 끝난다. 그런데 폭죽을 터뜨리는 놀이가 실은 왕을 암살하고자 했던 가이 포크스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종의 농이 섞인 정반대의 이론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이 포크스는 부당한 권력과 종교적인 억압에 저항한 정의의 사도이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한 의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이런 이미지는 2005년에 제작된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소녀(나탈리 포트만)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V’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있다. 그는 세상의 불의에 대항하고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그야말로 저항과 희망의 상징으로 형상화된 모습이다. 17세기 영국의 가이 포크스는 21세기가 된 지금도 가이 포크스의 가면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배재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박윤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