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과연 ‘반역’인가?

배재신문l등록2019.06.14 15:38l승인2019.06.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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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2016년 인터내셔널 부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녀는 “저는 소설에서 톤(목소리를 담는 것, 목소리의 질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데보라의 번역은 나와 똑같이 톤을 중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는 이 책을 쓸 때 인간이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면서, 데보라 스미스가 인간의 폭력과 인간의 고귀함을 그리고 싶었던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내 번역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은 작가뿐 만 아니라 그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에게도 공히 수여되는 상이다. 한강의 칭찬에 데보라 스미스는 멋진 작품을 번역하게 되어 자신으로서도 큰 영광이었다고 화답했다. 그녀는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이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 (Human Acts)와 『흰』(The White Book)을 번역했는데, 이 중 The White Book의 경우도 다시 한 번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최종 수상후보작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데보라 스미스는 2009년 케임브리지 영문과를 졸업했고 2010년 런던대학교 한국어 석사과정에 입학해 2015년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번역가이다. 이들이 합작해 수상하게 된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일컬어질 만큼 그 권위와 명성이 대단한 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한강의 수상이 결정되자 문학계 안팎으로 수많은 찬사가 이어졌다. 언론은 들떴고 사람들은 기뻐했고 노벨문학상을 예견하는 평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의 영문판인 The Vegetarian이 소개되자 곧바로 번역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주로 영문학계를 중심으로 번역가의 “미숙한” 번역에 대한 지적이 잇달았다. 가히 지적은 신랄했고 날카로웠다. 적극적이고 집요한 공격이었다. 비수처럼 예리하고 차가웠다. 그들 중 몇몇은 「번역오류60개」 라는 “친절한” 수정요구서까지 만들어 작가와 번역가는 물론 출판사까지 압박을 가했다. 급기야 개정판이 나왔으니 “더 없이 멋진 성공이었다.” 마침 필자도 영미소설시간에 The Vegetarian을 강의한 적이 있다. 원어와 비교하면서 오역한 부분과 원본에 없는 내용이 추가된 부분도 있어 그러한 점을 지적했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좋았고 간혹 번역된 부분이 더 좋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번역이었다. 아리랑 TV의 오정희 기자는 “우리말 어휘는 방대하고 의미의 유사성도 많아 낱말 각각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옮기는 것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고 말하는데, 이는 비단 우리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의 문학사회학자인 로베스 에스카르피의 말이다. 이는 한 언어로 표현된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소설 『롤리타』의 작가로 잘 알려진 블라디미르 나보코브의 번역이 있다. 나보코브의 이 번역은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으로 일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에드먼드 윌슨을 비롯한 또 다른 사람들은 원문을 글자그대로 “정확하게” 옮긴 그의 번역을 혹평했다. 나보코브는 자신의 번역을 “원문의 정확한 문맥을” 고려한 것이라고는 주장하지만 원문의 음조에만 집중한 축어적 번역은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식으로 작품 전체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이에 데보라 스미스도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한 인터뷰에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시대에 뒤진 방법이고 (내용을) 잘 못 이해하도록 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오역의 문제를 제기했던 평자들이 모두 다 그녀가 선택한 의역의 방식을 탓했던 것은 아니다. 기실 그녀의 번역에는 원문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문장이 덧붙여 있거나 누락된 곳이 있기도 하며 주어가 완전히 다른 문장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번역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는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The Vegetarian은 원문의 정신에 충실한 번역이었고 전체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풍요롭게 확산시킨 번역이었다. 한국을 찾은 데보라 스미스 자신도 한강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무엇보다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려 했고 그 다음으로 (의미)표현에 집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맨부커상의 심사위원장인 보이드 턴킨은 데보라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이 “화산처럼 강렬하면서도 멜로드라마보다 차분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채식주의자』 에 버금가는 침착함과 우아함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The Vegetarian의 가장 큰 장점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에 있다. 실제로 번역가에게 수여하는 맨부커상은 언어의 유창함보다는 translator의 창의성을 훨씬 더 중요시 하는 상이다.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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