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슬픈 단상들

배재신문l등록2019.07.04 23:09l승인2019.07.0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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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SE SARAMAGO 책의 표지이다. (사진=박윤기 교수)

 지난 3월 초 문재인대통령의 말레이시아 국빈방문이 있었다.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슬라맛소로selamat sore’라 말했고, 이에 일부 비판론자들은 이 말이 말레이시아 정부에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주 신났다. 그러자 외교부장관이 직접 나서 ‘슬라맛쁘땅slamat petang’을 슬라맛소르라고 한 것에 “부끄러움과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그것은 자국의 대통령이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한 “결례”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비난의 강도는 커져만 갔고 “사과” 또한 그랬다. 강경화장관은 외교부 전 직원의 책임 의식을 강조했고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당혹스러운 지시였다. 이건 언어의 문제이지 책임과 시스템의 관한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어쨌든 온 나라가 비난과 사과로 시끄럽고 민망했다. 그런데 더욱 민망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슬라맛소르라는 말이 말레이시아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말임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말레이시아 총리실 관료의 설명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그 말이 인도네시아만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인사말이 '엉터리'라고 비난받자 당혹한 쪽은 오히려 마하트리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었다. 매우 딱한 일이었다. 소르와 쁘땅이라는 ‘한갓’ 인사말조차 외교부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더욱 딱한 일은 '그 말'이 그 말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렇다. 무엇보다 그것을 두고 비난과 사과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난처함”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었다. 이건 가슴 아픈 일이다. 소수 언어에 대한 경시가 그렇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식이 그렇게 가벼웠다는 것 또한 그렇다. 이 일에 장관이 직접 나서서 사과한 것은 서글픈 일이었고 외국어 지식에 대한 국가적 무게가 그 정도로 가벼웠다는 것도 시리도록 아픈 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때는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포르투갈 출신의 Jose Saramago가 선정된 직후였다. 매스 미디어의 시대, 전 세계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 그의 이름을 전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호세 사라마고”였다. 하지만 아뿔싸!! 그의 이름은 호세 사라마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제기한 의문에서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것은 작가적 재능이나 작품의 수준에 관한 것이 아닌 이름에 관한 음성학적인 의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도 ‘한갓’ 발음에 관한 작은 시비였다. 사소한 의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의문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결과는 우스우면서도 슬픈 것이었다. 작금은 많은 사람들이 한 두 개의 외국어쯤은 능통했다고 말하는 시대이다. 실제로 그렇다. ‘난’ 아니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4~5개 이상의 외국어에 정통했다고 우긴다. 영문학자인 ‘나’도 ‘그들’엔 부럽고 ‘어떤’ 이들엔 경외감마저 든다. 그렇지만 이상한 일이다. 온 나라가 그 ‘한갓’ 사소한 발음문제에 시름할 때 ‘그들’과 ‘어떤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발음표기에 관한 혼란은 이어졌고 ‘누구들’에 의한 상상력이 극단적으로 발현되었다. 결국 “엉터리”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들’은 신났지만 민망한 일이기도 했다. 그것은 처음의 기세등등하던 ‘호세 사라마고’가 곧바로 ‘호세 사라마구’로 대체되었고 다시 또 ‘조세 사라마구’로 변화를 거쳐 결국엔 ‘주제 사라마고’로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극도의 혼란이 초래되었는데, 그것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의 유사/차이점이 원인으로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그가 포르투갈 출신이기에 ‘주제 사라마구’가 이상적인 발음으로 낙찰되었다. 실제로 이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기준에 근거한 표기세칙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게임은 끝났고 승자는 정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를 일이다.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하는 브라질 태생의 누군가가 말한다. ‘조세 사라마고’가 정답입니다. 다시 또 세상의 진리가 되풀이 된다. “승자는 혼자다.” 승자는 외롭고 자리는 위태롭다.

 우리 시대의 “사라마고는 상상력과 역설을 통해 삶은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는 스웨덴 한림원이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택한 이유로 붙인 말이다. 그런데 굳이 상상력과 역설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외국어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은 기껏해야 참기 힘든 가벼운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 지식이 무겁다고 어기적대며 주장하는 외국어 “능통”자인 ‘그들’이 존재한다.

영어영문학과 미디어센터장 박윤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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