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에 대한 해석 배재신문l등록2019.07.15 21:19l승인2019.07.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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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적 정의> 책의 사진이다. (사진 출처=박윤기 교수)

마사 누스바움Nussbaum이 있다. 그녀는 하버드와 브라운대학의 로스쿨을 거쳐 시카고대학에서도 철학과 신학과 등에서 법학과 윤리학 등을 강의했다. 그녀는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는 책에서 문학은 그 구조와 화법이 정치경제학관련 텍스트의 세계관이 담아내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포착한다는 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문학이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어서 문학은 인간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어날 법한 개연성까지를 다루기 때문에 그 폭이 더 넓다고 말한다. 그녀는 또 ‘왜 다른 장르가 아니고 소설인가?’라는 자문을 통해 “소설은 도덕적으로 심오하면서도 문화적으로 대중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문학은 그 구조와 화법에 있어 합리적인 과학적 기준을 전복시키는 욕망과 상상력을 형성하지만, 그 중에서 소설은 세상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있어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 그녀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문학적 상상력의 필요성을 논하면서 공적인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식을 잘 제시하는 작품으로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인 『어려운 시절』Hard Times을 꼽는다. 작품에서 공리주의 경제적 시각을 대변하고 있는 그래드그라인드Gradgrind는 경제적인 효용에서 문학은 결코 생산적이지 않으며 쓸데없는 허상을 자극하기에 지극히 위험하고 결국은 통제되어야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문학은 경제적인 효용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생산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는 바는 문학은 무엇보다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적 정의』에서 누스바움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도 인간존재의 내적인 도덕적 삶이 가지는 복잡성과 정치영역에서 상상력이 발휘하는 힘에 대한 통찰력이다. 공리주의의 대변자 그래드그라인드는 사회는 ‘감정’이 아닌 ‘이성’을 통해 그리고 질적인 형태의 추론적 ‘숙고’가 아닌 객관적인 수학적 지성의 ‘이론’적이고 ‘계산’적인 힘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둘 더하기 둘은 넷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제적 사유는 인간의 삶을 정답이 있는 간단한 수학문제처럼 지극히 단순한 것으로 축소시켜 규정짓는 서툰 해석이다. 삶은 선택에 따라 난처함과 고통이 수반되기도 하며 뒤얽힌 관계로 사랑 또한 더 이상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문제에 부딪쳐서는 두려워하고 좌절하게 되는 ‘압도적 질문’overwhelming question으로 정의 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순전히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도덕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도덕적인 문제라 함은 인간존재의 개별성과 내면적 깊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그것에 대해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공리주의적인 계산에 집중하는 맹목적인 경제학적 사유가 아니며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내면(양심)이라는 신비스럽고 지극히 복잡한 ‘핵심’heart을(를) 추적한다. 『어려운 시절』에서 공리주의적 정서를 대변하는 비쩌는 인간에 대한 그 어떤 공감이나 헌신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그다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런 그이기에 그는 인간의 개별성과 인간 삶의 다층적인 의미를 구별하거나 해석하지 못한다. 그는 이른바 공리주의적 교육방식으로 길러진 인물로 인간을 단지 “손과 먹고 마시는 위장을 가진 단순한 신체적 조합”으로 간주할 뿐이다. 이에 반해 슬리어리가 두 번에 걸쳐 “사람들은 즐기기도 해야 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다.인간은 경제적인 효용성만을 따지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하는 그야말로 “일손들”hands이(가) 아니다. 작품의 주 무대인 곡마단이 상징하듯이, 그곳은 그리고 이 세상과 인간의 삶은 유머와 모험, 기괴함과 놀라움, 음악과 리듬 그리고 갖가지 몸짓이 포함된 공간이자 어울림이다. 세상이 이러한 공간임을 인식하는 것, 인간의 경험이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바로 이러한 것들이 작품에서 말하는 인간의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장 소중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학은 인간의 감정과 밀접하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공포, 비애, 연민, 분노, 기쁨, 환희, 동정과 사랑에 이끌린다.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인간이 인간다운 가치를 지속시켜 나가는 힘을 주는 동력,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감정이다. 『시적 정의』에서 누스바움이 성취한 “페르마의 정리”는 이렇다.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박윤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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