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영어의 바다에 헤엄치고 있는가? - 영어혼용언론기사를 접하며

배재신문l등록2019.09.09 22:15l승인2019.09.0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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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도 너무 많다. 거의 매일 인터넷을 본다. 각종 기사를 읽는다. 그리고 그 기사에서 매번 보게 된다. 인터넷은 시사정보의 보고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렇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매체는 오프라인 매체에 비해 가볍게 느껴졌던 시대도 있었다. 아마도 수정과 정정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이 그렇다. 전통적인 브래티네커는 인터넷 웹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로 대체되었다.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오프라인 매체로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매체의 특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많아도 너무 많고 매번 본다는 말은 엄청난 양의 기사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수많은 기사에서 영어 사용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영어라는 바다에 헤엄이라도 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는 혼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요 며칠 나온 몇몇의 기사만 놓고 보자. 영어단어가 하나 쯤 혼용되고 있지 않은 칼럼을 찾기가 어렵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데스노트death note’라는 말이 나온다. 데스노트는 오오바 츠구미가 글을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만화의 제목으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그가 죽게 되는 무서운 힘을 지는 공책을 말한다. 물론 데스노트는 일본식의 영어로 올바른 표현법은 아니며 따라서 ‘데스노토デスノート’라는 만화나 혹은 그것을 각색한 영화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알기는 어렵다.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라는 단어도 눈에 띈다. 헤이트스피치는 우리말로는 증오언설이나 혐오발언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의미는 인종, 성, 연령, 민족, 국적, 종교, 장애, 언어능력, 정치적 견해, 사회계급, 직업이나 외모 등 특정한 사람/그룹에 대한 편견이나 의도적인 폄하 및 위협적인 발언을 말한다. 『중앙일보』는 한 기사를 통해 마이니치신문이 한·일 갈등을 격화시킨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하기 전 ‘인바운드inbound’나 경제에 악영향이 없는 범위에서 해달라고 주문했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말을 보도했다. 인바운드는 ‘귀향하는,’ ‘본국으로,’ 등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로 여기서는 ‘방일한국인’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 『머니투데이』는 「기술을 아는 정치인…양향자의 ‘테크폴리티션’ 양산론」에서 기술을 아는 정치인이라는 의미의 ‘테크폴리티션Tech+Politician’이라는 신조어를 받아쓴다. 「경쟁·미션 없는 '여성예능'의 탄생」 에서는 이른바 남성중심의 예능세계에서 <삼시세끼> <캠핑클럽> 등의 성공이 가지는 가치를 설명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로 표현한다. 리부트는 원래 컴퓨터를 ‘재시동’하거나 프로그램을 ‘다시로드’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여성(연예인)중심의 프로그램이 다시 부흥하거나 인기를 얻고 있다는 의미를 기대한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간추린 인터넷 기사에서의 영어혼용의 예는 극히 적은 예일 뿐이다. 그저 한 두 번의 ‘서핑surfing’만으로도 쉽게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에서 이렇듯 영어혼용이 빈번한 데에는 이유가 분명 있겠다. 그것은 아마도 효과적인 한 단어만으로도 다양한 의미의 함축된 내용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단순한 과시나 지적인 허영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적합하고 적당한 언어선택이 가정되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앞서 몇 가지 예에 한정해서 보더라도 ‘테크폴리티션’이라는 “신조어”는 그렇다 해도 ‘인바운드’만 놓고 보면 어색하고 ‘데스노트’ 또한 부과적인 설명 없이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리부트’는 어떻게 봐도 억지스럽다. 이렇게 본다면 언론기사에 나타난 영어사용이 반드시 효율적이거나 적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좀 더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눈 깜짝할 새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이 때 언어학적 측면까지를 고려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발언/기사가 “강렬하고 선명하게”(이 표현을 ‘임팩트impact’로 쓰고 싶은 유혹도 많으리라) 전달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다. 아무튼 이러저런 이유로 언론기사에서 영어의 혼용 빈도수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영어라는 바다에 풍덩 들어가 헤엄이라도 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큰 해가 없다. 오히려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지니는 힘은 무겁다. 아니, 한 단어만으로도 그 힘은 매우 크다.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회의석상에서 일본의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 배제조치의 부당성을 비판한 한국정부에 의장국인 칠레 측에서 ‘유감regret’을 표명을 했다는 기사를 실었는데 우리나라 외교부에서는 ‘유감’이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영어로 ‘regret’은 실망에 따른 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말의 있고 없음은 전체적인 문맥이해에 상당히 중요하다. 얼마 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인 ‘지소미아GISOMIA’의 종료가 선언되면서 ‘이해한다understand’라는 단어가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이 단어를 두고 우리나라가 미국과 해석상의 오해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국회위원도 있었다. 그 말이 어떻게 다른지 그로부터나 언론으로부터도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때문에 실제로 우리나라와 미국이 그 문제를 두고 “이해한” 바가 서로 동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것이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understand’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단순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것인지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황에 대한 공감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다. 실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Can you understand me? 와 Please understand.는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내가 말하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어?”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내 입장을 이해해 주세요.”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개의 문장에서는 목적어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understand’ 단어 하나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가를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비록 한 단어라도 단어 하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단어의 힘Your One Word』에서 에번 카마이클은 한 단어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 그는 단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최적의 전략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는 말한다. 그 말이 정확하다면 단 한 단어면 최적의 전략으로 충분하다고. 구구절절한 설명도 필요 없고 하나의 문장까지도 필요 없다고. 언론기사에서의 영어사용도 그렇다. 정확한 의미가 전달된다면.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박윤기 교수

 

1 『더팩트』(2019.9.7.): '데스노트' 덮은 정의당…조국 임명 사실상지지(헤드라인)

2 『디지털타임스』(2019.9.8.): 혐한 부추기기 안 된다...한국과 함께 살자. 日시민들 집회 열어(헤드라인)

3 『중앙일보』(2019.9.4): "아베, 경고만 주려다 韓 반발에 당혹" 반도체 수출규제 전말(헤드라인)

4 『머니투데이』(2019.8.31): 기술을 아는 정치인…양향자의 ‘테크폴리티션’ 양산론(헤드라인)

5 『한겨례 21』(2019.9.5.): 경쟁·미션 없는 '여성 예능'의 탄생(헤드라인)

6 인터넷 서핑: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흥밋거리를 찾기 위해 인터넷의 웹 사이트를 둘러보는 일

7 『중앙일보』(2019.9.4): 한국, 日비판했다 APEC 의장국으로부터 면박? 정부, “유감표명없어”(헤드라인)

8 『국민일보』(2019.8.26.): 윤상현 “文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목표는 한·미동맹 해체(헤드라인)”

9 에번 카마이클. 『한 단어의 힘』 . 김고명 옮김. 서울: 한빛비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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