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와 신앙의 딜레마

배재신문l등록2020.06.15 17:18l승인2020.06.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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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4. SBS [NEWS]는 「코로나 기세 앞 “기도 열심히 하라”... 혼돈의 아프리카」라는 제목의 내용을 방송했다. 앵커는 “코로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무서운 기세로 퍼지고 있지만 각국의 미숙한 대응에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카이로에 있는 특파원을 불렀다. 이에 기자는 기니와 나이지리아의 상황을 전했고 이어 탄자니아의 대통령이 제시한 대책에 대해 말했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이 제시한 대책이란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것 이었다”고 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말한다. “이상적인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다.” 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에세이에서 지식과 사랑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더 나은 삶을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식이 없는 사랑이나 사랑이 없는 지식만으로는 그러한 삶이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중세시대에 발생했던 흑사병으로 알려진 페스트와 관련된 일화를 예로 든다. 페스트가 전국으로 퍼지자 성직자들은 신도들로 하여금 교회에 모여 구원의 기도를 하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회당에 몰려든 신도들 사이에서 전염병은 급속도로 퍼졌다. 러셀은 이것을 지식이 없는 사랑의 예라고 말한다. ‘코로나19’(COVID-19)로 전 세계가 마비된 지금 저널리스트인 존 미첨은 〈지나간 시절의 팬데믹〉이란 기사를 통해 러셀이 말하는 지식이 없는 사랑의 결과를 되짚는다. 2020.05.07. 『뉴욕타임스』 에 실린 기고문에서이다. 물론 그는 역사적 사실의 실증을 바버라 터크먼에게 의존한다. 그는 터크먼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 대재앙의 14세기』에서 1303년과 1306-07년 두 차례의 소빙하기와 이상기후 그리고 1314년의 연속된 비로 인한 흉년과 그 결과로 인한 기근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터크먼이 1347년 10월 흑해 무역선원들로부터 시작된 흑사병이 중세를 암흑기로 만든 주범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한다. 페스트는 무서운 병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신속성도 무서웠지만 짧은 그 기간에 감당해야 하는 고통도 무서운 것이었다. 그 병에 걸리는 순간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계란이나 사과만한 크기의 검은색의 몽우리가 부풀어 올랐다. 부푸는 동안은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되는데 무르익어 터질 때면 시커먼 피나 고름이 스며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온 몸에 부스럼이 퍼지면서 피부 곳곳에는 내출혈로 인한 검붉은 종기가 생겨난다. 일단 전염이 되면 생존 시기는 불과 5일에 불과하고 정도에 따라 이틀이나 하루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끔찍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병에 걸린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죽음만큼이나 두려운 것이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연대기학자인 아그놀로 디 투라는 흑사병에 두려움이 심지어는 “아버지가 자식을, 아내가 남편을, 형제가 형제를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서운 전염병이 어떻게 해서 진정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학자는 물론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그것은 전염병이 확산되게 된 이유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페스트를 통제하게 된 방식과 서로 다른 방식에서 맞닿아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아마도 “격리quarantine”는 가장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영어로 “쿼런틴”은 글자그대로 40일간의 유폐를 뜻한다. 사회적인 격리가 팬데믹을 예방하고 사그라들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조반니 보카치오가 있다. 그리고 그가 쓴 『데카메론』이 있다. 이 책은 10을 뜻하는 “Deca”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남녀 열 명의 열흘 동안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페스트를 피해 인적이 없는 곳에서의 자발적인 격리를 선택했다. 반면 전염병이 돌던 초창기에 교황은 “참회의 행렬”을 허용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아마도 사랑에서였을 것이다. 역사학자인 바버라 터크먼이 그렇게 기록하고 저널리스트인 존 미첨이 그것을 확인한다. 교황은 팬데믹의 더 큰 희생자인 가난한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가여워했다. 그는 기도를 독려했다. 참회의 기도를 책려했다. 하지만 의도한 선의는 의도하지 않은 악화로 이어졌다. 전염병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이것은 지식이 결핍된 “사랑”의 예였다. 신앙의 딜레마였다. 물론 이는 중세시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페스트라는 팬데믹이 창궐한지 700년이나 지났다. 과학적인 지식도 눈부시게 방대하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지금 격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흑사병의 한 중간에서 페트라르카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지독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이후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기록이 단지 꾸며낸 “우화”처럼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지나간 시절의 팬데믹〉에서 미첨은 페트라르카의 이 말을 상기시킨다. ‘코로나19’가 그 때의 팬데믹처럼 사실이 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지식이 필요하다. 과학이 필요하고 위생수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가 격리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다.

 

<배재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트랙 교수 박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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