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Lyon 스케치

배재신문l등록2021.01.21 16:25l승인2021.01.21 16:3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사진: 배재미디어센터 제공)

 한국에서 석사 논문을 쓰는데 주로 참고했던 프랑스 서적의 저자가 프랑스 리옹2대학 교수였다. 그 교수에게 박사논문 지도를 받으려 프랑스 리옹에 갔다. 리옹은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삶의 조건이나 생활환경은 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리옹은 지중해 연안의 마르세이유와 함께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이방인이 살기에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곳이었다. 리옹에는 도시 전체를 내려 보는 높은 언덕인 푸르비에르 Fourvière와 그 위에 있는 성당이 눈에 띄었고, 강은 둘이었다. 리옹 북쪽에서 론강이 손강으로 나뉘어 도시를 지나 다시 론강 하나로 합쳐진다. 리옹에는 세 개의 국립대학이 있다. 론강가에 위치한 리옹2대학 (인문대학)과 리옹3대학 (정치, 법과대학) 그리고 이들과 좀 떨어진 곳에 리옹1대학 (공과대학)이 위치해 있다. 대학 캠퍼스는 우리와 같이 널찍하지도 맵시가 있지도 않다. 그저 나무 몇 구루와 의자가 전부이다. 대신 도시에 큼지막한 공원들이 잘 조성되어 있어 좀 쉬어가고 싶으면 그곳이 제격이었다. 꽤 큰 호수와 동물원 식물원이 있고 산책로 및 아이들의 놀이터, 많은 사람들이 뒹굴 거리는 잔디밭이 떠오른다.

 

▲ (사진: 배재신문 제공)

 리옹 시내를 거닐면서 횡단보도는 프랑스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나에게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빨간 불인데도 시민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건너는 모습이 자못 충격적이었다. 머뭇거리며 그들과 같이 할 수 없었던 나는 철저한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도로교통 규범을 지키지 않는 그들의 그런 모습에 의아해 했다. 의아스럽기는 운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런 횡단보도 앞에 정차해서 시민들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 아무도 경적이나 별다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속도를 즐기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프랑스 운전자들인데 말이다. 이것은 내가 풀어야할 첫 숙제였다. 그리고 이것이 리옹 시민들만의 특이 현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왜 프랑스인들은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할까? 파란불에도 지나가고 빨간불에도 지나다닌다. 아무렇지도 않게. 소위 선진국의 시민들이 아닌가. 그건 말짱 허울이었던가. 그런 배짱은 어디서 났을까? 우리나라에서라면 난리날 것이다. 시민들이나 지나는 차량의 운전자들도 손가락질에 욕설이 난무할 것이다. 고풍스런 도시의 모습에서는 내가 프랑스에 있음이 실감났는데, 시민들의 이런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빨간 신호등에 태연하게 건너는 그들과 건너지 못하고 그저 그들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던 내가 바로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 같은 기분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그랬던가. 얼마가지 않아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열에 끼어 태연하게 빨간 신호등을 비웃었다. 마음의 변화도 없이 가치관의 재정립 없이 그냥 따라 했던 셈이다. 내가 부하뇌동하지 않고 동행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좀 지나서였다. 그들의 그런 행동 저변에 있는 생각을 읽고 적잖게 놀랐다. 르네상스가 인본주의 사상이 도로에서 활개칠거라 감히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를 제외한 도심의 일반 도로에서 으뜸은 사람이었다. 프랑스에서 리옹에서 사람과 자전거는 자동차로부터 철저히 보호받고 있었다. 실제로 횡단보도나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자동차와 사람 혹은 자동차와 자전거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자동차 운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도로에서 사람과 자전거는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동차가 사람한테 경적을 울리면 벌금 부과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참으로 인본주의가 도로에서 실현되고 있음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후 횡단보도의 빨간불에 혹은 도로 아무 곳에서나 무단횡단하면서 주눅 들지 않고 인간으로 존중받은 기분이었다. 이는 그들 나름의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다.

 

▲ (사진: 배재신문 제공)

 프랑스는 합리성을 중요시한다. “Sois raisonnable!” (“합리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이 프랑스 말은 어린 아이들 교육에서 최후의 통첩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을 왜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그래도 아이가 듣지 않으면 체벌 전에 이 말을 한다. 정치에서도 합리성은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다. 극좌와 극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또한 이 둘은 서로 통하나 보다. 이 둘을 제외한 우파와 좌파는 합리성으로 소통한다. 동거정부 시절이 잘 말해준다. 좌파 대통령과 우파 수상, 혹은 우파 대통령과 좌파 수상이 동거정부를 구성해도 대화와 타협이 잘 이루어진다. 그래서 프랑스가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제)를 나름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정책이 달라도 국가 운영은 별다른 문제없이 잘 굴러간다. 각자 합리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은 합리성으로 시민들을 설득한다. 대통령 경선에 나선 한 후보자는 상대방이 비리협의로 검찰조사를 받아도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기보다 검찰과 당사자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자신은 소속 정당의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겠다고 한다. 합리성을 앞세우니 권모술수는 그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고, 정치는 어느 나라처럼 진흙탕 싸움이 아닌 재미있는 게임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어느 날 단박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7월 혁명, 2월 혁명, 68혁명 그리고 여러 차례의 민중봉기,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부역 청산이라는 역사적 굴곡 속에서 이룬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청산해야 할 것은 많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으면 선진국의 역사를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리옹의 푸르비에르 언덕 아래로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내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김 진 무 (주시경교양대학)

배재신문   
<저작권자 © 배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배재로 155-40 (도마동) 백산관 307호
대표전화 : 042)520-5265~6  |  발행인 : 김선재  |  주간 : 박윤기  |  편집국장 : 정승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영
Copyright © 2021 배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