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와 “가장 푸른 눈”

배재신문l등록2021.01.21 16:30l승인2021.01.2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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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배재미디어센터 제공)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되길 꿈꿨다. “가장 부유한 흑인 여성이 되고자 했다.” 『오프라 전기』에서 키티 켈리의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2003년 2월 [포보스](Forbes)는 세계 476명의 억만장자 대열에 그녀를 포함 시켰다. 그런 그녀가 가장 큰 모욕을 당했다고 분노하는 순간이 있다. 그녀는 티나 터너를 좋아했고 그녀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싶었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 있었고 〈헤르메스〉 매장 앞이었다. 마감 시간이 15분쯤 지나 있었다. 하지만 매장엔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거부당했다. 6년 후 그녀는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어떤 부티크 진열장에 전시된 값비싼 스웨터를 보았고 매장의 벨을 눌렀다. 그러나 이때도 그녀는 입장이 거부되었다. 물론 매장의 관리자나 직원들은 그녀가 누구인지(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그렇게 부자인지) 몰랐다. 그녀는 이를 인종차별로 보았다. 물론 이는 다분히 오프라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렇지만 부티크 직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유로 지난주 두 명의 흑인 트랜스젠더로부터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한 말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토니 모리슨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푸른 눈』이 있다. 이 작품에서 흑인 소녀 피콜라는 셜리 템플을 사랑한다. 『가장 푸른 눈』에서 흑인 소녀 피콜라는 푸른 눈의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을 동경한다. 그녀는 자신도 흰 피부의 아름다운 백인이 된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셜리 템플은 백인으로 배우이자 가수, 무용수, 사업가, 외교관으로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셜리가 있는 한 우리는 괜찮을 거다”라고 할 만큼 미국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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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흑인 방송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거꾸로 해서 만든 《하포Harpo》라는 미디어회사를 설립했다. 키티 켈리Kitty Kelley는 『오프라 전기』(Oprah: A Biography)에서 오프라가 어린 시절 힘든 상황에서 백인의 흰 피부를 동경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여기서 “가장 푸른 눈”은 미국 최초의 흑인여성 노벨수상자인 토니 모리슨Tony Morrison의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에서 착안한 것이다.

2. 『가장 푸른 눈』에서 흑인 소녀 피콜라는 푸른 눈의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을 동경한다. 그녀는 자신도 흰 피부의 아름다운 백인이 된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셜리 템플은 백인으로 배우이자 가수, 무용수, 사업가, 외교관으로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셜리가 있는 한 우리는 괜찮을 거다”라고 할 만큼 미국의 상징이었다.    

 검은 피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백인에 대한 동경이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받는 학대도 자신의 검은 피부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푸른 눈을 가지길 원한다. 세상에서 가장 푸른 눈을 갈망한다. “가장 푸른 눈”, 그것이라면 그녀는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삶은 변화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상처받고 버림받고 결국 미쳐간다. 미친 그녀는 그토록 간절하게 소망했던 꿈-가장 푸른 눈을 가지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미시시피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로부터 버려졌고 청소년기에 미혼모가 되었고 태어난 아들은 몇 주 후에 죽었다. 어릴 때 할머니와 살다가 테네시주에 이발사인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볼티모어의 WLS-TV에서 활동하다 시카고의 A.M. Chicago의 토크쇼를 맡게 되었고 전미 최고의 진행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토록 바랐던 부자가 되었고 다음으로 바랐던 배우도 되었다. 앨리스 워커의 대표작인 『컬러 퍼플』을 각색한 영화에서 소피아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했고 오스카 여우조연상의 후보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레이디스 홈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난 위대한 배우가 되길 꿈꿔왔어요”라고 말한다. 비록 그녀가 위대한 배우로서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 100인엔 선정(2005년)되었다. 키티는 그녀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을 스토리텔링 능력에서 찾고 있다. 오프라는 성경을 읽었고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도 외웠고 동화책도 탐독했다. 그녀는 우물에서 물을 긷거나 소에서 우유를 짜고 구정물 통을 비워야 하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로 공감을 자아내고 고통에 처한 시청자들을 위로 했다. 신데렐라가 마침내 행복해진다면 비슷한 처지의 모든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녀야말로 신데렐라의 전형이었고 실제로 “오프렐라Oprah-rella”라는 별칭도 얻었다. 키티는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공감능력을 그녀의 가장 큰 성공의 요인으로 보았다. 그런 그녀도  『가장 푸른 눈』의 피콜라처럼 매일 밤마다 셜리 템플의 푸른 눈과 금발의 곱슬머리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바버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백인이 되길 꿈꿨어요. 내가 자란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에서는 백인 아이들이 사랑을 더 받았죠. 훨씬 더 많이요. 부모님들의 사랑이 대단했어요. 그래서 저도 그들과 같은 삶을 원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프라는 10세 무렵부터 백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접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다이애나 로스를 보게 되었고 유색인종도 다이아몬드를 착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전 다이애나 로스가 되고 싶었죠. 전 다이애나 로스가 되어야 했어요.” 그 때부터 그녀는 흑인의 정체성으로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녀는 폭넓은 독서에 폭넓은 상상력을 가미했다. 물론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다. 유명인이 되고서도 그리고 엄청난 부자가 되고서도 그러한 차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와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그녀처럼 “귀여운 여인”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난 흑인이고 그 자체가 변할 수는 없어.”라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였고 차별과 한계를 극복했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했고 공감적인 정서를 자극했고 적극적인 도전과 긍정적인 활동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이 될 수 있었다. 흑인이라는 차이를 넘어 뛰어난 커리어 우먼이라는 차별을 성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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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버라 월터스Barbara Walters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방송인으로 1961년부터 1976년까지 NBC쌩묘를 진행했다.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의 귀여운 이미지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이 영화로 1991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로 2001년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들 모두는 백인이고 줄리아 로버츠는 오프라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트랙 교수 박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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