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 파이의 계속되는 역사

이지숙 수습기자l등록2021.09.24 22:43l승인2021.09.2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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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iStock_fbatista72님의 이미지)

 흔히 학교에서 접해봤을 ‘파이’라는 개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무리수이다. 3.141592……의 끝없는 소수점 아래 숫자들의 연속이다. 규칙이 없는 무한소수이며, 분수로 나타낼 수 없기에, 무리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끝없이 무한한 수가 바로 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파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최초의 원주율은 바빌로니아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들은, 원 안에 정육각형을 넣어 원주율을 구했다. 정육각형의 둘레 길이가 접해있는 원 반지름의 6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3.125라는 원주율을 구했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던 아메스는 파피루스에 넓이가 비슷한 원과 정사각형의 지름과 변의 길이를 적었다. 두 도형의 넓이를 이용하면 3.16이 된다. 이러한 최초의 원주율은 지금의 원주율에 비하면 비교적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당시가 고대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현재의 원주율에 매우 근접해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기원전 400년 고대 그리스에서 안티폰과 브라이슨이 원의 넓이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원을 중심부터 바깥쪽으로 자르며 변의 수를 늘리다 보면 잘게 잘린 조각들을 모아 직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이는 후에 아르키메데스가 원주율을 구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원둘레의 길이에 관심을 가졌고,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만나는 정96각형을 통해, 3.1416이라는 원주율을 구해냈다. 덕분에 원주율을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원주율 3.14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는 260년경의 고대 중국의 수학자인 유희에서 비롯되었다. ‘구장산술’에서 아르키메데스가 사용했던 정96각형보다 훨씬 세밀한 정192각형을 통해 원주율을 구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3072각형까지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해본 결과, 원주율은 3.14 정도면 충분히 정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나라 파이의 근삿값인 3.14의 시초인 것이다. 이후 송나라의 수학자 조충지는 유희를 뛰어넘어 세계 최초로 소수점 일곱 자리까지 정확하게 계산했다. 이렇게 계산한 3.1415926은 서양에도 전해졌고, 이후 천 년간 가장 정확한 수치였다.

 이후 독일의 수학자 루돌프가 소수점 이하 35자리까지 계산했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직접 구한 원주율 값을 새겨달라고 할 정도로 이러한 발견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그리고 뒤이어 1761년 독일의 수학자 람베르트가 원주율 파이가 무리수라는 것을 증명했고, 1882년 린데만이 파이가 무리수뿐만이 아닌, 초월수이기에 원주율을 끝까지 계산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지숙 수습기자  dlwltnr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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