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제공. 러시아군이 빼앗아간 아이들의 유모차 행렬이다.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 지난 2월 24일부터 지금까지, 러시아는 오로지 살상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터전을 짓밟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국민은 그들의 자유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러시아군의 총은 죄 없는 약자들을 향했다. 하늘에서도 볼 수 있도록 바닥에 러시아어로 ‘어린이(дети)’라고 쓴 민간인 대피소 마리우폴 극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각) 폭격 당해 약 300명이 숨지는 참극이 벌어졌다. 1804년 설립되어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던 카라진 하르키우 국립대 또한 러시아 점령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우크라이나의 국민 화가인 Maria Prymachenko의 미술관이 공격당해 그의 예술 작품들이 불타 없어지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가 제네바 협약으로 민간 지대에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이나 진공 폭탄 같은 살상무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도 나오고 있다. 전쟁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된 우크라이나의 난민은 약 400만 명에 육박하며, 이는 11년간의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리아 난민의 3배에 달하는 숫자다. 이처럼 전쟁은 한 달이 조금 지난 이 짧은 시간 만에 수많은 생명과, 터전, 미래, 교육, 역사, 그리고 인간성과 예술을 모조리 없애버린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의지만큼은 불태울 수 없다는 점이지만, 러시아의 끔찍한 폭력이 하루빨리 끝나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 한겨레 제공

  지난 29일(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5차 평화 협상이 열렸다. 4시간 동안 진행된 5차 협상에서는 이전 협상들과 다르게 급진적인 진전이 보였다. 두 나라 간의 휴전 합의안 가능성이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안보 체제가 보장된다면 중립국의 지위를 채택하겠다고 제안했다. 러시아의 핵심요구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나토 조약 제5조와 비슷한 내용과 효력을 가진 안보 체제를 요구한 것이다. 나토 조약 제5조는 동맹국 중 1개 혹은 그 이상의 국가가 외부의 무장 공격을 받을 시 동맹 전체 또는 일부 회원국들이 피습당한 동맹국을 지원한다는 규정이다. 우크라이나는 독일, 이스라엘, 터키, 캐나다, 이탈리아, 폴란드, 이스라엘 등의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방식의 새로운 안보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중립국이 될 시 원래 금지됐던 자국 내 러시아어 사용을 배려하거나,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의 모든 영토에서 외국 군사기지를 두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모든 부분에서 한 발짝 양보한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의 비무장화 요구에 대해서는 “비무장화 고집 시 협상 중단”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내보였다. 2014년 러시아가 침공해 강제로 병합했던 우크라이나의 남부 영토 크림 반도의 문제에 대해 앞으로 15년간 협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러시아 협상단은 이 같은 협상 제안에 “건설적 협상”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는 상호 신뢰를 위해 즉각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체르니히우 지역에서의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단, 러시아는 이것이 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남동부 전선에는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어 친러파 반군이 장악한 돈바스의 해방이라는 명분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공세 완화 뜻이 러시아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닌,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으로 인한 군사적으로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철수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 러시아는 희망 있게 진행됐던 5차 평화 협상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는 협상 당일에도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이어갔다. BBC는 협상에서 즉각적으로 군사활동을 멈추겠다고 밝혔던 체르니히우 지역에서조차 러시아군의 총격이 계속 들린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이나 미 국방성의 브리핑에선 러시아군의 일부 철수가 ‘철수가 아닌 공격을 위한 재배치’ 전략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볼 때까지 어떤 것도 예단하지 않겠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5차 평화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전쟁이 일단락될 수 있을 거라는 미약한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러시아가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긴장감 또한 남았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희생을 깨닫고 전쟁을 끝내야 마땅하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현재 우리의 일상은 평화로울지 몰라도, 바다 건너 땅 건너 이웃 나라에선 2022년에도 전쟁이나 독재정권 탓에 피 흘리며 죽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빌며, 우리는 세계시민 중 한 명으로서 두 나라를 계속하여 지켜봐야 하고 목소리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