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희(심리철학·4) 주시경교양대학 글쓰기교실 튜터

지난 여름, 나의 문학적인 우상이 죽었다. 그녀의 죽음은 그녀의 글을 읽고 자라왔던 나의 시간들을 모두 무너트렸다. 나는 그녀의 변명에 귀를 기울였지만, 사실 제대로 들리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한구절한구절이 변명처럼만 느껴졌다. 그녀의 글을 읽었던 때가 주마등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글이 거짓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내 독서의 시간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한 사람의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런 마음에서 글을 썼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누군가가 귀를 기울이고 동조해주리라는 믿음이 그녀를 책상 앞에 불렀을 것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글을 쓰는 행위가 가진 그 난해하고 어두운 시간들을 견디고서라도 기어코 글을 쓰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느껴졌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그녀의 시간들을 존경했다. 무수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 사이를 누비며, 그녀가 축조한 세계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의 세계가 무너졌다. 나의 세계도 함께 무너졌다.

나는 교내 글쓰기교실에 소속된 튜터로 매학기 1학년 학부생들의 글을 읽고,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후배들의 글은 소박하고 신선하다. 나름의 고민이 있고 그 글 속에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학교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나름의 책임감이 글마다 서려있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글이 어떠한 무게를 가지는지에 대한 생득적인 무게감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학부생들의 글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첨삭하다보면 인터넷 등에서 남의 글을 무분별하게 가져다 쓴 글도 보인다. 이제 막 글을 쓰는 학부생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표절하는 것을 보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진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과 내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물론 1학년 학부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글의 시작은 나의 생각이라는 대 전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어설프더라도 그렇게 한 자 한 자, 스스로 어렵게 뗀 문장들이 자신을 성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삶의 양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 훔치는 대상이 무형의 산물일 때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생각을 훔치는 것은 우리가 어릴 때 보던 동화에서나 나오는 악마의 일이 아니었던가.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자신의 고민과 번민을 통해 스스로의 글을 완성해 본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차가운 계절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겨울은 한없이 혹독하고 외로우리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 외로워진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나는 생각할 것이다. 나의 글을 읽을 불특정의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나를 거울삼아 걸어 나갈 것이다.

내 속에 있던 그녀의 세계가 무너졌다. 나는 그 폐허 위에 새로운 세계를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