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을 혁명이라 배운 시절이 있었다. 쿠데타를 통해 세워진 제5공화국을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고 가르친 시절도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배우지도 못한 시절도 있었다. 국정 교과서 때의 일이다.

▲ 김현곤 편집국장

1974년,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세운 박정희는 자신의 정변행위를 혁명으로 부르게 했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은 자신의 정권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고 서술했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사람들을 무참히 죽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했다. 과거 국정화 시절, 미화를 일삼았던 일이 지금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라 밖을 봐도,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몇 없다. 북한과 방글라데시, 이슬람국가 일부뿐이다. 설마 정부는 북한과 한 배를 타겠다는 것인가.

현재 검정제 교과서가 좌편향이라서 국가가 나서 교과서를 쓰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국민 대통합을 강조하던 정부가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 “저 새는 해로운 새”라며 마오쩌둥이 참새 퇴치 운동을 지시했다가 참새의 먹이였던 해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대규모 아사사태를 낳았던 중국의 일을 우리 정부는 잊었나. 친일파를 친일파라 배우고, 독재를 독재라고 배우는 것이 왜 좌편향인가.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을 쳐다보는 격이다.

새누리당은 더 하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전국에 내걸었다. 언뜻 보면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큰 비중을 두고 배우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체사상이 교과서에 소개된 것 자체는 사실이 맞다. 정부가 주체사상을 교과서에 소개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지난달 교육부가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주체사상과 세습체제, 천리마 운동, 7·4 남북공동성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등을 의무 기술하게 했다. 정부가 쓰라기에 쓴 것이다. 의무 기술을 어길 경우 정부의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라고 말하는 정부가 어딨냐”고 했다. 주체사상을 가르치라고 말한 정부는 당신이 국무총리직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다.

국정화 교과서의 이름을 ‘올바른 교과서’로 바꾼 것도 가관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역사 교과서는 잘못된 역사 교과서란 말인가. 정부가 검정해 정부가 통과시켰던 교과서들이 모두 잘못된 교과서로 규정하는 행위는 누워서 침 뱉기가 따로 없다.

국정화 발표를 전후해 교수들은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학생들은 반대 성명을 냈다. 대자보도 붙였다. 중·고·대학생을 가리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역시 반대했다. 교육부가 직접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중·고교 교사의 약 3분의 2가 국정화 교과서를 반대했다. 역사교과 97%가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조사도 존재한다. 현장에서 반대하는데 굳이 시행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황우여 장관은 “교과서 집필진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사로 구성되어 있지 못하며, 그 결과 검정제의 가장 큰 취지인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세하게 ‘주체사상’까지 가르치라고 했던 것도 정부였다. 다양성이 일어날 수 없게 막은 것도 정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정화가 아니라 역사 교과서 집필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일이다.

정부 입맛대로 재단한 국정 교과서는 아이들의 미래를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요한 일이다. 5년 임기 단임 정부가 감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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