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으로 만난 ‘숭고한 희생’

이세진

1. 선택의 공간 그리고 <부엌>

인간의 삶을 선택의 삶이라고해도 무방할 만큼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까지 선택 행위는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그 선택의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옳은 선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 신중의 신중을 기한다.

오수연의 <부엌> 속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의 삶을 선택한다. 바로 얽매인 삶, 간섭받는 세상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가 고향을 벗어나 선택한 곳은 익숙한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 인도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기위해 ‘나’는 집을 구한다. 그 과정 중 아이러니하게도 ‘부엌’이 마음에 드는 집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처음 나는 이 낯선 곳에서도 살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 때문이었다. 흰 찬장은 내가 떠나온 고향의 부엌을 연상시켰고, 안도감을 주었다.

숟가락이며 행주 같은 자질구레한 살림살이까지 마련해 놓자 이 부엌은 고향의 부엌과 썩 비슷해졌다. 집 안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이 부엌이었다. (중략) 나는 자꾸만 부엌으로 가고 싶었고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다보니 예전과 똑같은 부엌에서 전처럼 꼼지락거릴 바에야 이 먼 데까지 왜 왔나 하는 생각마저 마침내 들었다.^₁₎

 

‘나’는 요리를 싫어하는 것이지 ‘부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향의 모습과 흡사하게 꾸며진 현재의 부엌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때로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먹는 것, 요리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부엌’이라는 공간까지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 ‘부엌’이었기에 의식적으로 그 공간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무의식 속에는 고향과도 같은 그 익숙한 ‘부엌’이 좋았고 그것이 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된다. ‘나’에게 ‘부엌’은 싫어하는 행위가 행해지는 공간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왜 이렇게 ‘부엌’이라는 공간을 밀어내고 있는 것일까? 왜 이토록 요리 행위를 싫어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무엇을 선택해야하는 상황에서 생겨난 두려움이 만들어낸 증오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부엌’이라는 공간은 반드시 무엇을 자르고, 다듬고 원래의 형태를 없애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즉, 죽음의 공간이면서도 탄생의 공간인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양면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데 반드시 상처를 내어야 하는 이 공간은 ‘나’에게 선택을 폭력적으로 강요한다. 그래서 ‘나’는 선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면, 회피, 혼자인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다모’와 ‘무라뜨’ 두 작중인물의 영향으로 그 공간의 몸담게 되고, 끝임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게 된다. ‘나’는 두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사람과 헤어짐이라 생각하고 다시 혼자됨을 선택한다.

2. ‘다모’와 ‘무라뜨’ 그리고 ‘포식자’이자 ‘피식자’

<부엌>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모와 무라뜨, 그리고 주인공 ‘나’이다. 작가는 이야기 시작부터 다모와 무라뜨를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로 대립시켜 보여준다. 그들은 음식 취향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한 마음가짐 또한 굉장히 다르다.

우선 ‘다모’는 “어떤 음식이건 무엇인가의 생명을 희생시켜서 만든 거잖아요? 너무 많이 먹거나 호사스럽게 먹거나, 먹고도 남아서 버리는 행위는 불필요한 학살이에요.”라 말하며 요리는 생물의 희생을 가져오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최소한의 음식만을 섭취하려 노력한다. 나보다는 주변의 것을 더욱 생각하는 인물로 그의 시선은 오로지 바깥의 모든 생물들로 향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대한 기대나 욕심은 거세되어진 상태로 아무에게도 상처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를 더 병들게 하고 아프게 만든다.

반면에 ‘무라뜨’는 채식주의를 신분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것,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자들의 욕심이 드러나는 불순한 것이라 말하며 철저히 육식에 의존한다. 신분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을 식습관으로 보여주며 과도한 육식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다모’로 인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된 ‘나’를 위해 향긋한 고기요리를 만들어 준다. ‘다모’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던 ‘나’처럼 ‘무라뜨’는 끊임없이 ‘나’를 위한 음식을 제공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디의 편에도 서지 못하고 기준이 없는 행동으로 그들을 대한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나름의 이유로 자신의 신념을 가진 그들에게 동조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방법이라 ‘나’는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어리숙한 동조는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라는 것을 깨닫고 결국 선택의 상황이 일어났을 때 ‘다모’를 선택하게 된다.

세 인물의 관계를 보면 ‘행복’과 ‘불행’의 관계로 얽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다모’는 ‘나’로 하여금 음식을 하게 하는 인물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요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한 이유로 혼자인 삶을 택했다. 하지만 ‘다모’에게 만은 달랐다. 그가 원하는 요리를 해오고, 그가 그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 행복함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일한 공간에서 맺어지는 ‘무라뜨’와 ‘나’의 관계는 ‘다모’와 비교했을 때 사뭇 다르다는 것 느낄 수 있다. 요리의 주체가 달라졌다. ‘무라뜨’는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들고, ‘나’는 그것을 먹으며 잠깐의 위안을 갖기도 한다. 이렇듯 동일한 공간에서 요리하는 자, 먹는 자가 나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리를 하는 행위 즉, 먹기 위해 무언가를 제거하는 행위는 생태계를 빗대어 보았을 때 포식자들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연스럽게 포식자가 되지 못한 존재들은 피식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수연의 <부엌>속 ‘나’는 ‘피식자’이면서 곧 ‘포식자’가 된다. ‘무라뜨’는 ‘나’를 먹는 ‘포식자’이며, ‘다모’는 ‘나에게 먹히는 ‘피식자’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요리를 먹는 행위를 포식자의 행동이라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 상황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작품 속 제공되는 요리를 먹는 행위를 하는 ‘다모’는 ‘나’를 먹는 포식자가 될 것이고, ‘무라뜨’는 ‘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피식자’의 위치가 되어버린다.

이 사실로 알 수 있듯 ‘부엌’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확실한 ‘피식자’와 ‘포식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선택에 대한 갈등 속에서 모든 사람이 ‘포식자’이자 ‘피식자’였던 것이다.

3. ‘끼르띠무까’의 선택

가장 높은 신이 자신에게 대적하는 잡신들을 벌주기 위해 만들어낸 괴물인 ‘끼르띠무까’는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버리는 굶주림의 화신이다. ‘포식자’의 역할로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진 ‘끼르띠무까’는 결국 자신을 먹어버리고 입이 닿지 않는 머리통만 남게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고 ‘영광의 얼굴’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더 이상 어떠한 존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온전했을 때, ‘끼르띠무까’는 모든 존재를 먹어치우는 최상위의 포식자였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타 존재를 제거함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가는 욕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최상위 포식자의 길을 포기한다. 자신의 몸을 뜯어먹고 더 이상 무언가를 스스로 먹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얼굴만 남은 ‘끼르띠무까’는 비로소 누구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는 영광의 존재가 된 것이다.

 

살기 위해 그는 남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남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되도록 남들과 접촉을 줄여야 했다. 그는 존재함으로써 차지하는 시간과 공간 속의 자신의 부피를 가급적 압축해서, 상처를 주고받을 확률을 줄였다. 호흡을 멈추듯 세상과의 교류를 중단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고 소유하지도 않으며, 목숨을 유지할 만큼만 먹었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말아야 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해치거나 상하게 할 수가 없었다. 감각과 감정이 있는 생명체 일체는 다들 그처럼 상처 받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었다.²⁾

 

이것은 작품 속 ‘다모’가 꿈꾸던 이상향이었다. 타 존재에게 상처주지 않는 삶, 내 몸이 아프고 힘들지언정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그 생각을 완벽히 실천해낸 존재가 바로 ‘끼르띠무까’였던 것이다. 만약 ‘끼르띠무까’가 선택의 기로에서 타 존재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배고픔만 생각했다면 ‘영광의 얼굴’이 아닌 여전히 ‘욕심의 상징’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그 숭고함이 우리로 하여금 그 무시무시한 얼굴이 ‘영광의 얼굴’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끼르띠무까’는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숭고한 희생’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다 하겠다.

4. 부엌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인생의 의미

의, 식, 주.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食을 행할 수 있는 부엌이라는 공간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가 바로 부엌인 것이다. 작가 오수연은 그러한 이유로 부엌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의 삶의 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의 시작에서 말했듯 인간의 삶은 선택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게 된다. 작품 속 내가 다모와 무라뜨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겪어나가는 갈등상황과 굉장히 닮아있다. 작품 속 나는 결국 희생의 숭고함을 깨닫고 피식자의 길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이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렇듯 부엌은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속에 녹아있는 의미망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이면에 숨어 있는 강압과 억압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작품 속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본 부엌의 공간은 무척이나 불편하고 어려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만들어낸 신념과 기준에 따라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물이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선정해 놓은 선택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 결정에는 수많은 고통과 인내가 따른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세 인물은 부엌에서 무언가에 억압되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모와 무라뜨 사이에서 선택에 대한 억압에 시달리고, 다모는 무언가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에 대한 억압에 고통 받는다. 무라뜨는 신분제도에 대한 불만과 그것에 맞서 자기 위로에 대한 억압에 의한 삶을 살아간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기 위해 고통을 감뇌하던 곰과 호랑이처럼 작품 속 세 인물은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금기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부엌이라는 공간은 선택을 강요하는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선택함에 있어 수많은 금기와 규제가 있기에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그 삶을 살아가는 주체가 감수해야하는 고통인 것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었을 때 비로소 욕망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숭고한 선택자 제 2의 ‘끼르띠무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주석)

¹⁾ 오수연, <부엌>, 이룸, 2001, 10쪽~11쪽.

²⁾ 오수연, <부엌>, 이룸, 200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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