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수필 부문 가작

배재신문l등록2022.09.14 10:23l승인2022.09.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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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은 TV를 켤게 

연극영화학과4 권나은 

 

나는 TV를 잘 켜지 않는다좋아하는 드라마가 시작될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간을 죽이며 끝내 TV를 켜지 않는다내용이 궁금하면 드라마가 다 끝나고 나서야 인터넷을 켜 간략한 내용 몇 줄이 실린 기사를 보고 내용을 파악한다케이블 채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재방송을 틀어주어도 일부러 외면하며 채널을 돌린다진짜 보고 싶은 드라마라면 다시 보기로 보면서 심각한 장면이 나오면 빨리 감기로 장면을그 갈등들을 넘겨버린다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를 시작은 하지만 끝까지 보지 못한 채 마음에 남겨둔다그래서 친구가 내게 너는 왜 드라마가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보다가 그만두느냐고 물어도 나는 그냥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인공들의 갈등이 심해져 울거나주저앉을 때면 나는 고개를 돌리고 TV를 껐다내 맘에도 비가 내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드라마에서는 악역이 나타나 선량한 이들을 괴롭히고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어딘가 다치고누군가가 죽고울고주저앉는다내 인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고나를 평생 사랑해줄 것 같이 굴던 사람들이 떠나고사랑하는 사람이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고울고주저앉았다나는 내 삶과 같은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의 치부가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린 나의 상처가 공공연히 전파를 타서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클리셰라고 치부되는 진부한 갈등들은 내겐 삶이자 상처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나 자신과의 싸움에도누군가와의 갈등에도 나는 늘 몸을 떨었고 소리 없는 울음을 삼켰다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나의 무능함에 대한 자각으로 힘들었던 날들장난으로 나를 할퀴던 아이들그런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대던 아이들그리고 누군가의 시기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받았던 손가락질과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비난 섞인 눈총을 받던 시간이 나를 더 웅크리게 만들었다하지만 그 웅크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나는 아프다고울고 싶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내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렀다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았다언제나 내 등을 쓸어줄 엄마도 있었고바보 같은 고민을 한다고 꿀밤을 때려주며 웃어줄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더욱 웅크리고 몸을 떨었을 뿐이었다학창시절에 누구나 겪고흔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나는 입을 열지 않고 손을 내밀지 않으면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진짜 문제는 내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카메라를 만져보고비싼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고영화의 첫 출발점에 관해 배우는 것은 흥미롭고마음 벅찬 일이었다하지만 이야기에는 늘 갈등 요소가 등장해야 한다는 이론을 배우며 내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이야기 속 등장하는 갈등을 해결은커녕 마주하지도 못하는 멍청이 같은 내게 갈등이 가득해야 하는 영상을 만드는 일은 꽤 벅찬 일이었다작품을 찍으며 작은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겪는 작은 싸움들조차도 난 쉽게 넘기지 못했다밤이면 기숙사로 돌아와 저릿한 마음을 끌어안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그래서 나는 영상을 찍는 수업은 늘 피해서 들었고어쩌다 듣게 되면 모든 일을 내가 도맡아 하며 갈등을 피했다몸이 남아나질 않을 만큼 버거웠지만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갈등을 겪고 싶지 않았다갈등을 해결하지 못 하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지 못했을 때 만들어지는 가장 최악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게 외면하며 지내다 졸업 작품을 구상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긴 이야기를 구성하고 싶었던 나는 장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그렇게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는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인물들의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게는 조금 벅찬 일이었다. TV 속 꾸며낸 상상 속사람들의 갈등도 마주하지 못하고내 앞에 마주한 갈등도 어쩌질 못하는 내가내 손으로 누군가에게 시련과 갈등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힘들었다써내려가야 하는 손은 계속 부유했고머리가 아팠다주인공들이 울고소리 지르고주저앉아야 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만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드라마의 대본집을 띄엄띄엄 보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모든 비극이 희망을 꿈꾸는 역설인 줄을 알아야 한다고그는 말했었다.’ 라는 구절을 발견했다가만히 들여다보았다그 짧은 두 줄의 글을 읽고또 읽었다꼭 나를 위해 존재하는 문장인 것 같았다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대본집 속 등장하는 영상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그리고 다른 드라마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빨리 감기를 해서 넘기지도딴 짓을 하면서 외면하지도 않았다이야기 속사람들이 어떤 갈등을 겪는지그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마주했다조금 힘들었지만 견딜 만했다인생 그리고 악역과의 싸움은 생각보다 쉬웠다내 마음만 강하면 그리 무섭지 않은 것이었다나는 늘 불행한 사람이고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남들이 알지 못 하는 치부가 있다고 생각했고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상처가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꺼내서 털어보니 나는 그다지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내 아픔과 슬픔은 그렇게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나는 부유하던 내 손을 가라앉혀 무너지는 삶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무너졌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도 그려냈다내 이야기 속 그들은 무너져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다힘들어도지쳐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괜찮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자신만 힘든 삶을 산다고 탓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내 졸업 작품 속사람들은 모두 아프다하지만 모두가 누군가를 반길 줄 알고보듬을 줄 안다자신의 상처를 내보일 줄도 안다나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웃어 보이는 바보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애써 외면하지 않고 속 끓이지 않고 갈등을 해결할 줄 아는 삶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힘들면 힘들다고 내 삶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손을 뻗고눈물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이제 조금 더 많은 갈등과힘든 싸움이 가득한 사회로 나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웅크리지 않을 것이다힘들어도 찬란하고 청명한 삶을 사는 이야기 속사람들을 보며 배울 것이다오늘은 TV를 켜 그들이 또 어떤 시련을 겪는지그 시련은 어떻게 극복하는지 바라보고 싶다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는다고 의아해했던 친구에게 카톡을 남겨야겠다. ‘오늘은 드라마를 볼 거야.’라고.

 

배재신문  pcnews@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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