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수필 부문 입선

배재신문l등록2022.09.14 10:26l승인2022.09.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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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예찬

심리철학상담학과4 강동균

 

오늘도 나는 뛴다주변 사람에게 나는 6년 차 마라토너다포레스트 검프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 뛴다는 건 설렘이다물론 뛰고 있을 때 이야기다뛰기 전 필사적으로 게으름과 싸운다뛰기 싫어 온갖 핑계를 댄다인간 내면은 정말 선과 악이 공존하나 보다그 유명한 데카르트가 인정했던 악마정신을 지배한다는 사악한 악마는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한다한바탕 처절한 싸움 후 나는 뛰고 있다.

막연히 뛰지는 않는다몸이 허락하는 5km가 적당하다시간은 30여 분시간과 공간은 한정되어있다정해진 시간 안에 나만의 공간 속을 뛰는 기분이란오직 해 본 사람만이 이 짜릿함을 안다요즘은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정확한 거리 측정이 가능해졌다내가 어디에 있든 나만의 공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뛴다는 것물질 만능 시대를 살면서 이런 값비싼 여유를 부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뛴다는 본질다가올 미래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인간의 정신은 육체와 떨어질 수 없다데카르트가 육체보다 정신의 우위를 강조했지만우리는 둘이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몸은 알 수 없는 애인 같다일주일에 2회 이상 뛰는 걸 한 주라도 안 뛰는 순간몸이 바로 반응한다우선 숨이 가빠지며 침을 자주 뱉는다체력이 있으면 주변을 살피며 달릴 텐데 초보 운전자처럼 시선은 앞에만 고정되어 있다.

내가 처음 제대로 뛴 장소는 제주도였다평생 없던 복이 군복으로 모였을까제주도에서 군 생활을 했고거기다 무료하다는 이유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지나고 보니 이 얼마나 배부른 고민이었던가호기롭게 첫 출전을 하프 마라톤으로 시작했다왠지 정식 마라톤을 하기는 겁났고 10km는 어딘가 부족했다대회가 3월이었으니준비 기간은 겨울이었다뛰는 시간은 매일 석양이 바다를 뒤덮는 그 순간이었다붉은 석양 아래로 파도들이 휘몰아쳤다차디찬 해풍을 단지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2달간 버티며 달렸다.

봄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그 날나는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완주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소수 인원이 준비했던 것과 달리 대회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있었다처음은 항상 떨린다지만 왜 그렇게 떨리던지그 떨림이 아직도 선명하다군중 속의 고독이었을까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정신없이 뛰었다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에게는 지기 싫었고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뒤처지기 싫었다그러다 점점 육체가 힘을 잃어갔다어느새 그 많았던 인파 속에서 뛰고 있던 나는 혼자가 되어있었다사람들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위치가 정해졌다.

우리는 경쟁하며 살아간다지금까지 내 삶은 매 순간 경쟁이었다남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곳을 선점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러다 조금이라도 쉬어가면 패배감이 밀려왔다뛰기 전에 느낀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그런데 신기했다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자리에 있었다분명 경쟁 속에서 시작했었는데마지막은 완주로 박수를 받았다이 박수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내가 나를 인정한다.’ 이것이 내가 뛰면서 배운 교훈이다. ‘나를 인정한다.’는 나를 책임질 마음가짐이 됐음을 의미한다마음이 갖춰지면 행동도 달라진다행동이 달라지니 신기하게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그냥 달리기했을 뿐인데나라는 사람은 바뀌고 있었다그렇다고 경쟁이라는 구조 속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아직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다거기다 내가 잘하기만 해서는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누군가가 뼈저리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뛴다처음 떨림을 느꼈던 제주도 해안도로에서부터 춘천광화문광안대교학교어디든 길이 있으면 뛰면서 생각하고깨닫는다인생은 각자 위치가 정해져 있음을그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나와 내 친구들 모습을 떠올린다그러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처럼 뛰는 사람들과 마주친다생면부지 모르는 사람과 그 순간 느끼는 동질감은 짜릿하다비록 각자의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속도로 가고 있지만끊임없이 나와의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음을 공유한다.

달리기를 몰랐던 시절 한 시 구절은 쓸쓸하게 다가왔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 마지막 두 행이다그 시절 나는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였다혼자만의 열등감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경쟁에서 지고 나면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지금은 다르다이 시를 보면서 자기애(自己愛)를 떠올린다진정한 자아를 만났을 때 사람은 성숙해진다나에게 달린다는 행위는 운동이 아닌나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배재신문  pcnews@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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