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의 별

한국어문학과3 오관석

 

몇 년이 지났어도 그 당시보다 더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 중 한 곳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 수많은 별들… 학교에서 별자리표로만 별을 배웠던 나에게 그 광경은 아찔하면서도 아득했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실습 시간이었다.

 

최근 들어서 꿈에 취한 채 집에 들어오는 때가 잦아졌다. 퇴근길 사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몇 초였지만, 지금은 십여 분이나 되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번뜩 정신을 차려보면 집인 경우도 다반사였다.

“신입사원도 이것보다는 잘해오겠다.” 과장의 이 한 마디 때문에 이리 되었다고 난 스스로를 진단했다. 입사한지 3년차 밖에 안 됐지만, 이 말을 들은 이후 항상 양복 안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어둔 것은 그 이유였다. 배운 전공을 못 살리는 지금의 일을 하는 것은 마치 현실에 발가벗겨진 채 방황했던 사회 초년생 때와 똑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취업 준비생일 때는 궁금한 것도 많았고 내 할 얘기는 하면서 지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시선도 느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집에 도착해 쓰러져 자려는데 누군가 전화를 해왔다. 잠에 짓눌린 눈꺼풀 때문에 누구의 호출인지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목소리 다 죽어가네. 자려고?

유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괜찮다 말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마터면 소파에 엎어진 채 잠들 뻔했다. 그리고 또 새벽에 일어나서 잠을 설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유성에게 고마웠다.

-괜찮으면 나와서 술 먹자.

다 죽어가는 내 목소리와는 달리 유성의 목소리는 마치 밤을 활보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볼까? 라는 유성의 물음에 괜찮다고 답하고 늘 만났던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둥! 둥! 둥! 둥! 두두두두둥!

 

가게 안으로 들려오는 북소리는 가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반주 소리가 아니었다. 가게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시위대의 북소리였다. 시위는 가게 안 TV에서 소리 없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시위대의 모습은 몇 년 전에 본 은하수였다. 은하수는 길게 늘어져 어딘가의 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저 사이에 나는 없다.

“살만은 하냐?”

유성은 고기를 뒤집으며 물었다. 나는 사직서를 떠올렸다.

“……아직은 그럭저럭. 너는? 회사는 잘 다니냐?”

“잘렸어.”

“뭐?”

유성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놀라 되물었다.

“그렇게 됐다. 최근 밝혀진 건데, 회사에서 한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하더라? 액수도 어마어마하고 말이야. 그래서 일부 사원들이 그 돈을 사원들 복지에 써달라고 항의하니까 회사에서 권고 사직서를 내밀더라고. 나는 뭣 같아서 그냥 나왔는데, 같이 항의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안 내고 버티더라.”

“그래도 생계가 달려 있는데, 좀 참지 그랬어. 당장 뭐 먹고 살려고.”

“내 성격 상, 알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더 못 견뎠을 거야. 어제까지 시위하다 오늘은 너 만나려고 빠진 거야.”

시위에 참여하고 싶어졌다. 나도 저 안에 들어가 무엇이라도 외치고 싶었다.

“요즘 취업난도 심각한데, 왜 힘든 길로 가려 그래?”

유성은 말없이 잔에 술을 따르고는 나를 보며 병을 살짝 들었다. 나도 따라 바쁘게 잔을 비워냈다.

“내 대학 동기 어디 갔어? 항상 현실보다 꿈을 좇던 친구는 어디 가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자식이 있네.”

내게 술을 따라주며 유성이 물었다.

밖에서 다시 북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함성이 파도처럼 일어나 거리 구석구석에 퍼졌고, 가게 안으로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 소리에 마음 한구석에서 어떤 감정이 일었다. 이 감정이 뭘까 생각을 해봤지만, 작은 속삭임 밖에 안 되서 금방 신경을 껐다.

“그때는 내가 어렸단 생각이 들어. 만만치 않더라. 열정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너무 많잖아.”

넘어간 지 한참 지난 술의 뒷맛이 목구멍에서 쓰게 올라왔다. 기분 탓일까, 나는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렇지. 그렇지만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에 넘기 힘든 벽도 있어. 그리고 네가 예전에 말했잖아. 꿈마저 잃는다면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거냐고.”

“꿈을 잃은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때는 너무 현실을 보지 않았다는 거야.”

순간, 유성에게서 그 시절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 순간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사면팔방에 반딧불이 같은 빛 수 천 개, 수 만 개가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이곳은 우주라는 것을 알았다. 난 거기서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형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의식마저도 흐릿해져 가던 때 외마디의 비명과 강력한 충격에 정신을 차렸다.

“야! 괜찮아?”

유성은 내 몸을 세게 흔들고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어, 어? 왜?”

“잠깐이었지만, 심각할 정도로 멍 때려서. 너 정말 괜찮아?”

“응. 요새 자주 이러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한숨을 내쉬고 뺨을 세게 두들겼다.

“진짜 괜찮은 거지?”

눈을 감은 내 귓가에는 걱정스러운 색을 띤 유성의 목소리만 맴돌았다. 가까이 다가왔던 북소리보다 더 크게.

 

꿈……, 꿈이라는 마약은 참 달콤해서 가끔은 꿈인 것을 깨달아도 깨어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꿈의 미로에서 헤매는 것은 그 이상으로 현실에 치명적 위협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에 몸이 강제로 나를 꿈속에 밀어 넣어도 눈을 돌렸던 것이었다.

매번 꿈에서 나는 한 호수에 누워있는 채로 눈을 뜬다. 호수는 내 발을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맑은 물에는 내 모습과 맑은 하늘이 그대로 담겼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꿈이라서 그럴까, 내려쬐는 햇볕도 서늘하게 부는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호수의 물길을 따라 걷는 것도 꿈결 같았다. 무게감 없는 왼발에 놀라 내딛는 오른발은 모래 깊이 잠겨들어 현실처럼 휘감는 감각이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발걸음은 현실과 꿈을 오가는 환몽 같았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둥그런 파동이 이어졌다. 다시 앞을 보면, 나아갈 길에도 파동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나는 문득 파동의 끝에 시선을 꽂았다.

내가 시선을 맞춘 파동이 울리며 멀어질 때마다 시야도 한 번씩 요동쳤다. 시야의 끝에 다다랐을 때 한 줄기 파동은 하늘과 물이 만난 수평선으로 자리 잡았다. 순간적으로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끓어오름에 수평선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수평선도 똑같이 멀어졌다. 뒷걸음질 치면 또 그 만큼 가까워졌다.

시작도 끝도 같은 그 간극에 선 찰나,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울렸다.

 

쾅! 쾅! 쾅! 쾅!

 

창을 통해 들어온 햇볕 때문에 눈을 잠시 감고 있다가, 뜨거워진 다리에 꿈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꿈으로부터 계속되는 울림에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어 보니 유성이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야, 그 귀신 보는 듯한 표정은.”

“갑자기 연락도 안 되고 걱정했잖아, 이놈아!”

“아, 잠깐 졸았어.”

“잠깐? 잠깐이라고?”

유성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을 잤다고? 사람이 그렇게 잘 수 있냐?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나는 마지막을 떠올려봤다. 분명 유성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 잠을 잔 것이 마지막이었다. 휴대폰의 시간은 그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꿈속에서 일주일을 살았던 것일까.

“너 병원 가봐. 걱정된다.”

“알았어. 내일. 내일 갈게. 지금은 회사 가야해.”

“회사가 문제야? 지금은 네 몸…”

“내일 갈게. 내일.”

유성의 다그치는 말을 끊고 바로 옷을 입고 회사로 출근했다.

과장은 나에게 소리치며 회사를 다니기 싫은 것이냐고 물었다. 사장도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누구도 과장을 말리지 않았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과장은 조금의 누그러짐도 없이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과장. 거기까지만 하게.”

사장은 마지못해 나서는 말투로 과장을 달랬다. 과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깍듯하게 알겠다고 말했다. 결국 결근을 휴가로 대체하고서야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꿈은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앗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로 꿈에 취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기억의 공백도 사라졌고 귀가해서 TV 리모컨 잡을 힘도 없더니, 지금은 책 반 권을 읽고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유성과의 술자리 이후 조금씩 나아진 일상 때문일까, 술을 권유하는 유성의 전화가 기다려졌다. 가끔씩 시위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스트레스를 풀러 노래방에 간 것처럼 북소리에 맞춰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도 했다. 옆에는 항상 유성이 있었다. 유성은 내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날. 사람들의 함성에 조금 일었던 감정을 이해했다.

어느 날, 과장이 나를 불러서 말했다.

“받은 자료 잘 보았네. 그런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과장은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이게? 내가 판단하기에 완전 뜬구름 잡는 계획으로 보이는데? 이걸 좀 더 현실성을 갖춰서 가져오게.”

“그럼 신입사원 시키십쇼.”

“뭐?”

과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싶었다. 나는 품속에서 사직서를 꺼내서 과장의 책상에 놓았다.

“전 아무래도 이 직장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미 예전에 냈어야 했는데, 많이 망설였습니다. 과장님이 전에 그러셨죠? 신입사원이 더 잘하겠다고. 그래서 제 일을 이제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에게 넘겨주려 합니다.”

“아니, 이봐. 너무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그때 한 말을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건가?”

과장은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상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의 꿈속에서 보았던 수평선이 떠올랐다.

“아니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이제 걸리는 것이 없어요. 마음이 편합니다.”

 

상사들에게 직접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사과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고, 광장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촛불을 나눠 받았다. 노을도 사라져갈 때 쯤 하나 둘 촛불이 밝혀졌고,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촛불은 더욱 빛이 났다. 사람들은 ‘각성하라!’를 목청 터져라 외쳤다. 나도 촛불을 높이 들고 같이 외쳤다.

각각의 별(星)들은 은하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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