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평론 부문 당선

배재신문l등록2022.09.14 10:37l승인2022.09.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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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든 열매의 신기루

한강 내 여자의 열매』 

국어국문학과4 강석현

 

나 그대 잠든 창가에 화분이 될게요.

아무 말 못해도바랄 수 없어도.”

― 러브 홀릭스화분」 부분

 

1. 아스팔트 위의 화분

“I think we'll be ok here, Leon.”, 여기에서라면 괜찮을 것이라 말하며 소녀 마틸다는 화분을 땅에 옮겨 심는다영화에서의 화분은 고독한 암살자였던 레옹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늘 떠돌아다니는 모습그리고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롭고 작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다만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인물들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는 영화 속 화분은 적어도 자유를 품고 있다.

하지만 한강의 소설 속 화분은 그렇지 못하다처음부터 자유는 베란다라는 문명적인 공간에 의해 차단당해있고 그저 그곳에 놓여 있어야 한다마르틴 하이데거의 이론에 따라 화분을 하나의 존재자라고 볼 때화분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첫째는 인물의 관점에서 묘사를 보면,

 

커다란 화분을 구해 와서 거기 나를 심어주었어요.”

 

이 화분은 너무 좁고 딱딱해요.”

 

다음날 나는 여남은 개의 조그맣고 동그란 화분을 사서 기름진 흙을 가득 채운 뒤 열매들을 심었다말라붙은 아내의 화분 옆에 작은 화분들을 가지런히 배열한 뒤 창문을 열었다.

 

화분은 문명(도시안에 덩그러니 놓이는 자연(화분)으로 화분은 세계라는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존재자이다화분은 세계를 상징하며그것은 고정되고 확실한 것이지만 곧 레옹의 화분처럼 언제 외부의 충격이나 위험에 의해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함과 위태로움을 지니고 있다결국 화분은 사람들이 가지는 좁고 위태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파트 베란다라는 문명의 세계에 안전히 놓인 것 같지만 그 안에 심어진 꽃(사람)은 불편해하고 괴로워한다또한 메마른 흙이 채워진 직사각형의 화분들은 곧 현대인들의 삶의 공간인 도시라는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자연(식물)은 온데간데없고 물질()만 남은 방(직사각형), 그것이 화분이다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직선은 악마의 선이요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작가도 같은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도시는 악마가 만든 직선의 공간으로 둥그런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자연과 대비되는 장소인 것이다.

둘째로 작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화분은 인물(사람)을 보여주는 장치이다소설 속 인물들 관점에서는 화분이 하나의 세계였듯이작품 자체에서 보면 화분은 하나의 인물을 상징하는 존재자로서 작용하고 있다커다란 화분으로 옮겨졌는데도 얼마 가지 않아서 좁고 딱딱하다고 느끼는인구 칠십만이 모여 산다는 상계동 아파트에서 말라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내는 굳어진 세계 속에서 계속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해서 한계에 부딪치는 사람즉 문명화된 삶 속에서 자연적인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자다그리고 화분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 답이 되지 못한 것은 결국 단순히 확장하더라도 동질적인 세계를 유지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아무리 약간의 생활 반경을 늘리고 새롭게 주변을 가꿔보아도 문명사회라는 고정된 테두리 안에서 사람은 계속 지쳐가고 불편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내는 피를 전부 갈기를 희망한다화분 안의 흙을 전부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기를그리고 그 방식은 세상 끝까지 가보는 것이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나아가 아내는 자신의 피를 갈아내지 못하고 그것을 줄곧 후회하게 된다피를 갈아내지 못했으므로 문명화의 잔재로부터 우리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리고 화분은 자연적인 삶을 상징하는 대상이기도 한데화분을 기르는 것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몹시 중요하다평생을 외롭게 살았기에 꽃을 길러 자연으로 빈자리를 채우려는 남편이나문명적인 삶에 혐오감을 느끼고 작물이 조금이라도 잘 자라면 하루 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좋아하는 아내나 모두 자연적인 삶으로의 복귀를 바라는 현대인들의 초상이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화분이채소들이 한 번의 수확도 못한 채 시름시름 죽어갔다는 점에 있다말라죽겠다던 아내(화분)는 결국 베란다로부터도시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식물이 되어버린다이는 현대인들이라는 존재의 존재자인 아내가 완전한 삶의 자유진정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결국 사람들이 아스팔트(도시)로 된 길 위에 덩그러니 놓인 화분처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적시해 놓고 있는 셈이다.

 

2. 광합성하는 나체(裸體)

이 작품은 내 아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듯 계속해서 몸에 멍이 들고그 과정의 끝에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버리는 것이 주요 골자다그 멍은 왜 드는 것일까아내도 나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원인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떠나서 피를 갈고 싶어라고 아내는 말했었다. (중략그렇게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어가장 먼 곳으로지구 반대편까지 쉬엄쉬엄그러나 세상의 끝으로 떠나버리는 대신 아내는 그 얼마 안되는 자금을 이 아파트의 전세금과 결혼비용에 털어부었다.

 

과학적으로 멍이 생기는 이유는 여럿 존재한다대개 혈관에 외부적으로든 내부적으로든 문제가 생기면그것이 터져 살 아래 맺히는 것이 멍이다아내는 새로운 피를 수혈 받고 싶다고자유로운 공기로 낡은 폐를 씻어내고 싶다고 말한다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아내의 몸이 먼저 나쁜 피를 견디지 못해 뱉어내는 것이다도시에서의 삶과 매연에 지친 아내가 가지는 보이지 않는 상흔이 멍으로 나타난다.

 

욱신거리거나 하지는 않는데멍든 부분에 감각이 없어그게 더 무섭지 뭐야.”

 

내가 요즘 왜 이럴까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고밖에만 나가면…… 햇빛만 보면 옷을 벗고 싶어져뭐랄까마치 몸이 옷을 벗기를 원하는 것 같아. (중략)그저께는 발가벗고 베란다로 나가서 빨래건조대 옆에 서 있어보기도 했어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 따뜻한 빛을 좀 더 깊숙이 받아들이고 싶어서 베란다로 나가 옷을 벗었어요벌거벗은 살에 내리박히는 햇빛이 꼭 어머니 살내 같아서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만 불렀어요.”

 

특히 멍에 통증이 없다는 것은 멍이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인 것을 암시한다대개의 멍이라면 멍든 자리를 눌렀을 때욱신거리는 통증이 수반된다단절된 혈관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크기 때문인데소설 속 아내의 경우는 그 푸른 멍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그것은 멍이 자연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내의 소망을 드러내는 징후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밖으로 나가고 싶고미친 여자처럼 베란다에서 발가벗고 서 있었다는 아내의 증언은 아내가 폐쇄되고 갇힌 베란다즉 집(도시)으로부터 얼마나 탈출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내가 얼마나 자연적인 삶을 바라고 있는가에 대한 말 없는 표현이다식물은 모두 나체(裸體)고 그것들은 햇볕을 쬐며 그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엽록소를 얻어 더 짙은 푸른색바로 자연의 색을 얻는다아내가 발가벗는 행동그리고 그 뒤에 점점 더 커지고 진해지는 멍은 자연적인 삶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식물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합성 과정과 다를 바 없다그리고 아내는 햇빛에서 어머니 살내를 느낀다고 한다식물에게 어머니는 곧 대지(가이아)광합성을 통해 어머니를 느끼는 것 또한 아내의 자연회귀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부분으로아내의 친어머니가 있는 곳(고향)이 바닷가란 점을 생각해 볼 때도심에서 벗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태초의 바다인 양수즉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을 바라는 의미로도 유추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3가지 자아인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가 서로 갈등한다고 하였고인간의 본능에는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이 있는데 이 중 삶의 본능에서 욕망이나 생명적 충동 등 인간의 모든 행동 속에 숨어 있는 근원적 욕망을 리비도(libido)라고 정의하였다그리고 리비도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원초아라고 이야기하였고융 또한 리비도가 생명 보존 본능의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중요한 것은 리비도가 바로 성욕구를 뜻하는 것이며이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원초아는 곧 본능적인 욕구다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내의 행동은 자연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와 본능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것은 바로 벗은 나신의 상태이며옷을 벗으라는 남편의 말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잠자코 알몸을 내보이는 것이다멍을 보여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진짜 욕구를 드러내려는 원초아의 행동이다그렇다면 왜 아내의 욕망은 식물이 되는 것일까그것은 아내의 고향이 바다이기 때문이다어린 시절 살았던 바닷가의 삶에 이미 아내는 환멸을 느꼈고그렇게 도망친 곳이 도시였으나 결국 아내는 도시에서의 정착도 실패했다바다와 도시두 곳을 제외하면 남는 세계는 숲의 세계 밖에 없기 때문이다.

 

3. 환상에서 여물은 열매

헤르베르트 자이들러는 액자소설이란 한 액자 속에 여러 내부 이야기가 포함된 것으로 액자는 기능적으로 거리화(metrization)에 봉사할 수 있고특유의 예술적 의미로 예술작품의 밀착과 압축이며공상적이고 환상적인 내부 이야기가 일상적인 관계로 이루어질 때 각성의 형태일 수 있다고 하였다또한 중요한 것은 액자구조가 내부 이야기의 근원을 제시하고 그것이 왜 진술되는가와 내부 이야기간의 거리를 발생시키면서 그 개연성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내 여자의 열매』 또한 액자소설의 형태를 지니며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공상적이고 환상적인 내부 이야기를 녹여내고 있다이는 1990~2000년대의 한국문단에서 보였던 환상성을 지니는 소설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이 삐삐를 저 여자에게 줘버린다면이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바로 그것이다. (중략내 성기가 발기한 것도 그때쯤일 것이다흥분을 느꼈다내 일생동안 한 번도 그런 존재를 소유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나로부터 발산되는 신호만을 수신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를 말이다.” ‘1. 호출하는 자

 

생리가 시작될 조짐이었다. (중략그는 아마도 오늘쯤 나를 호출할 것이다. (중략그런데 오늘 그가 정말 나를 호출한다면속옷도 입지 않은 채 그를 만나야 할까아니면 내일 만나자고 할까?” ‘2. 호출되는 자

 

내 전화번호만이 쓸쓸하게 메아리치고 있는 이 삐삐결국 내가 가지고 있었구나. (중략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생리가 시작될 조짐이었다……로 시작되는 단편 말이다.” ‘3. 호출은 없다

― 김영하 호출』 부분

 

소설가 김영하는 삐삐라는 현실적 매개를 이용해 두 남녀의 삶을 연결 짓고 있지만결말부에서 볼 수 있듯 그것은 모두 남자의 환상이며 여자는 남자가 창조주로서 자신의 글 안에서 만들어낸 존재라는 점을그리고 그 전에는 공상 속에서 살아가게 했던 존재란 사실을 보여준다존재하는 남자와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환상(幻想)을 액자구조로 보여주고 있는 호출처럼이 작품 내 여자의 열매도 한 여자가 식물이 되어간다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상을 마치 일상적인 내용인 것처럼 보여주는 액자소설의 형태를 활용하고 있다.

 

아내는 차츰 말수를 잃어갔다나에게 무슨 말도 먼저 건네지 않았으며내가 무엇인가를 물으면 고갯짓으로만 대답했다.”

 

어머니이제 어머니께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중략그이는 무척 친절해졌답니다.”

 

이제 아내의 몸에는 한때 두 발 동물이었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작품의 초반에는 남편의 시점에서환상이 전개되는 중반부터는 아내의 일기를 읽어나가는 것 같은 느낌의 아내의 시점에서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과 환상이 섞이는 부분에서는 다시 남편의 시선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띠고 있다. ‘현실-환상-현실과 환상의 뒤섞임이라는 도식은 김영하의 작품이나 한강의 작품을 보았을 때환상성을 지닌 소설들의 구조적 특징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이러한 액자소설의 구조로 한강 작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일상적인 내용처럼 독자에게 보여주는 효과를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각자의 1인칭 서술을 통해 같은 사건이 남편과 아내에게 어떠한 차이로 다가오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이런 서술방식을 통해 서로가 지닌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그들의 현실이 얼마나 피폐하고 메말라있는가를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아내의 알몸에서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오랫동안 섹스조차 하지 않았던 남편과 남편에게 고향에서의 과거를 밝히지 않고 의사에게 진찰 받은 뒤의 과정 또한 말하지 않는 아내는 사랑이라고 하는 이름의 열매가 제대로 된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서로가 다르게 보고 있는 환상 속에서 무르익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가의 장치다.

그리고 아내가 식물이 되고 나서야 남편은 아내에게 성욕을 느끼고 아내 또한 행복한 자리를 찾았다는 것은 현실과 환상이 혼재(混在)된 상황에서야 그들이 안식을 찾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대인들의 삶이 평범한 현실 속에서는 진정한 안도와 행복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작가의 메시지다이렇듯 작가는 액자 구조를 통해 두 인물의 현실이 한 액자 안에 겹쳐지는 것 같으면서도 별개의 각도에서 촬영된 상황임을 드러내고 있다.

 

4. 도시 속 숲의 아이러니

열매라는 존재로 결실을 맺은 그들의 환상은 어디로 가는가작가의 시선은 그들의 결말을 으깨진 열매와 도시 속 식물원으로 이끈다열매는 불임이었던 아내가 꿈꾸던 이상향으로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박탈당한 여성이 새로운 존재로의 변태를 통해 다시 모체가 되는 과정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자연적인 식물이 되어가는 모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식물원은 작품 속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화분으로 가득 찬 베란다는 도시 속에 남자가 인공적으로 만들고 싶어 했었던 숲이다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따라 보면 남편이 베란다에 조성한 작은 식물원은 숲이라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아내의 열매 또한 결국 그녀의 여성성이라는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인 것이다그래서 아내의 열매와 남편의 숲이라는 이데아는 각기 으깨진 열매와 도시 속 식물원으로 현실 속에 존재하고그것은 두 사람의 환상이 끝나는 모습을 상징한다앞서 말했던 하이데거의 존재자처럼각기 이데아의 그림자가 이데이라는 존재의 존재자라고 할 때으깨지고(열매완전한 숲의 모습이 아닌 공간(식물원)으로 있는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존재를 얻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희극일까 비극일까작품에 내포된 작가의 메시지는 비극으로도 볼 수 있지만 작품 자체만으로 본다면 아내와 남편 모두 나름의 환상에 따른 결말을 맞았다는 점에서 희극으로도 볼 수 있다노드롭 프라이의 이론대로면 늦은 5월에 시작하여 겨울에 종극을 맞이하고 봄을 기다리는 이 소설은 아내와 남편의 희극으로 시작하여 여름(로망스)과 가을(비극)의 과정을 거쳐 겨울(아이러니)에 아내의 변모라는 종극을 맞이하고 다시 봄(희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내용이다하지만,

 

나는 그것을 힘주어 깨물었다내가 지상에서 가졌던 단 한 여자의 열매를. (중략봄이 오면아내가 다시 돋아날까아내의 꽃이 붉게 피어날까나는 그것을 잘 알 수 없었다.

 

다음과 같은 본문의 묘사를 보아도 작품은 희극으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만약 열매가 열매인 상태로 다시 꽃을 맺고화분들이 성장하여 숲에 가까운 모습을 취하는 도시 안의 식물원이 되었다면 그들의 결말은 비극보다는 희극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자의 열매가 화분으로 옮겨져 다시 꽃이 필지도 불분명하고가능성 중 하나는 남자의 입 안에서 으깨졌으며남자가 키우고 싶었던 베란다의 화분들(식물원)은 모두 시들어 빈 화분만 남았을 뿐이다.

결국 작가가 환상을 통해서 아내에게 결핍된 환생을 허락한 것처럼 남편이 식물이 되어버린 아내에게서 결핍된 소원의 성취를 이루는 것처럼 작품은 현대인(도시인)들의 결핍된 현실제대로 된 숲이 아니라 그 그림자만을 보고 살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을 그리고 있다신기루와 그림자 사이의 아이러니야말로 작가가 억압된 여성성과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따스하면서도 냉혹한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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