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시 부문 가작

'섬광' 외 4편 배재신문l등록2022.09.14 13:26l승인2022.09.1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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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

김다희

갈매기는 죽어 물결의 별이 되었다

 

고래의 울음이 멎고 사람이 목청 높였고

사람의 숨통이 멎고 그이는 펄펄 날았다

 

갈매기는 죽어 물결의 별이 되었다

 

지독한 꽃불의 소란

물그림자 어른거릴 적에

어슴푸레한 꿈결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말은 녹아내리고 어둠은 침묵

적막의 장막이 소라고둥 속을 맴돌다가

자라는 수초 새를 짓궂게 간지럽힌다

 

소용돌이치는 번뇌는 언젠가의 나들이

짙푸른 유리 조각에 저며내는 별의 파편

 

차가운 피가 손끝을 지나치면

깊고 깊은 끝없는 안식의 절벽

 

우리는 다다르는 섬광에 이름을 잊었다

짙은 성운 속에 고독을 잃었다

 

추락하는 꽁지깃이 포말에 일렁인다

바다로 이주한 새가 겨우내 늘어났다

 

미인점

김다희

여름의 끝에 오도카니 서서

펜촉에 잉크를 먹였다

점을 눌러 찍을까 고민하며

당신의 왼쪽 뺨을 떠올렸다

 

기어코 서투른 오른손을 쓰려 힘들이면서는

얼굴은 왼편이 더 곱다

까무룩한 초생달처럼 웃던 조각을

 

그 달을 닮은 검은 꼬리를 달고야 말았다

반점의 의뭉

갈무리를 늘이며 이별을 붙잡는 멍든 손톱은

분명 끝맺음보다 커다랗지 않은가

 

머뭇거림은 못 다 써 내릴 사무침

쉼표의 진명은 닫지 못할 그리움

가슴에 만든 당신의 무덤을

언제든 더듬을 수 있을 낫

 

한낮의 공터

버석한 속삭임

낯 뜨거운 공허

닿고픈 지난 해의 계절

닫지 못할 이 별

 

실증

김다희

 

까막눈의 남자가 실어증에 걸렸다

그가 오랫동안 기른 개는

제멋대로 이를 세워 질긴 사료 봉지를 뜯었다

지루한 장마 동안 벽과 천장의

이음새에서는 버섯이 자라났다

언어를 빼앗긴 인간은 성급한 갈바람처럼 메말라갔다

엉성한 직조로부터 걸러진 낡은 햇발은

퀴퀴한 칡뿌리 색이었다

이따금 새부리가 유리 창문을 쪼아대는

소리만이 어수선했다

 

몇 년이 지나자 온갖 종류의 수런거림은 잊혔다

또다시 몇 년이 지나고서야 빛바랜 현관이 열렸다

공무원들은 작은 개와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사람의 백골을 발견했다

둥근 머리뼈 주변에는 머리칼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가구라고는 귀퉁이가 험하게 깨어진

기름한 거울 하나가 다였다

 

누런 벽지에는 읽을 수 없는

괴괴한 쪽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마치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본 듯한

표정들이 롬아갔다

상형인가 언어인가 암호인가

실증으로 빚어낸 끝 없는 외로움인가

이름 모를 사내의 자서전은

기록되지 못한 채 기억되었다

 

밤나비

김다희

당신은 밤나비가 되겠노라 했습니다

무수히 아름다운 것들을 두고서는

영영히 깨어지지 않을 것들을 두고서는

어찌 그런 잿빛 몽중에 사느냐 물었습니다

 

불나방이 되어 생각 어스레한 밤을 누비고

내 주변을 서성이다가

화등잔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겠답니다

그럼 불을 삼키는 것이니

 

바람이 되었다가

밤이 되었다가

부름이 되었다가

또 불이 되는 게 아니냐구요

 

당신의 눈동자가 붉었습니다

아니, 지척인 이별이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우느냐 물으니 냉큼 고개를 가로 흔듭니다

꼭 설렁설렁 날갯짓하는 밤나비처럼 말입니다

 

모태

김다희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에 앓았단다

 

입 다물지 않는 상처는

영영토록 아물지 않을 것이며

등껍질 산산조각 깨어져 나뒹군대도

딱한 눈길조차 없으리라

 

몸뚱이는 진창에 묻힌대도

찬란한 고름은 빛을 내고

때로는 깊숙한 가슴 언저리를

할퀴기도 했단다

 

그런데도 어떻게 내버릴까

티끌만 한 모래 한 알

외로운 껍질 새로 찾아온 보물

내 눈물과 상처가 네 피와 살이 되고

가죽을 파고드는 어리광이 마냥 찬란한 것을

 

뼈만 남는대도

이 몸 재도 없이 사그라든대도

네가 있어 미련 없겠구나

너 하나만으로도 가득하여

후회 남을 자리가 없구나

 

내 어여쁜 진주야

윤슬이 수천 번의 해를 삼키고

수만 번의 조류가 춤춘 뒤에

 

파랑의 색이 바뀌고

뱃사람의 말이 바뀌었을 즈음

어렴풋이 하나만 그려다오

 

반짝이는 네가 그 무엇보다 소중해

자장가 불러주는 이가 있었다

 

그리 새겨다오

 

배재신문  pcnews@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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