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1

이학준

내 안쪽 깊은 곳은 나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

어둠으로 씻어내야 비로소

솔직해지는 시간

 

달빛처럼 얇고 하얀 원석을 꺼낸다

 

매일 나누는 인사조차

처음이 되어버리는

조명 아래

 

도안을 그려내는 세공사 하나

낯선 모습에 펜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린다

 

검지가 머리를 박아대는 건 책상인데

시간의 모퉁이가 깎여 떨어진다

 

현미경도 닿지 않는

안쪽 깊은 곳부터 손끝까지

한참을 늘어놓아야 닿았다 겨우

불그스름 달아오른 문장을 게워낸다

 

펜은 진심을 흩뿌리며 획을 연마한다

 

한없이 뱉어낸 마음을

한아름 눌러담은 문장을

한걸음 한걸음 모아

 

너에게 보낼

단 하나의 보석이다

 

 

편지2

이학준

 

아직 막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하늘은 관객들로 만석

편지는 재빨리 안주머니에 얼굴을 숨긴다

 

우산을 토닥토닥

왜

자기들이 더 설레는 걸까

왜

이렇게나 떨려 오는 걸까

 

투명한 지붕 너머 흐르는

이들의 내음이 아득히

널 처음 만난 무대로 데려가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린 쉴 새 없이 내리는 이들 중 하나가

화려히 지나가는 우산들 중 어딘가에 앉아

이어지고 떨어지는 사이, 소중한 보석일지도 몰라

필사적이었다 너에게

겨우 맞닿은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이었다

 

수줍게 고개를 들어보는 손바닥

관객들은 온데간데

손바닥이 마주친 건 너의

손

 

편지는 대사를 까먹은 것도 모르고

요란하지만 고요하게

무대에 오른다

 

 

편지3

이학준

 

고작 손바닥만 한 체구로

연약하게 다문 입술

너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손끝에 설렘을 묻혀 쓰다듬어요

편지의 첫 입을 떼어요

 

행여 바람이 질투할까

안쪽 깊은 곳에서 꼭 잡아 올린

터무니없이 투명하고

고개조차 들 수 없이 무거운 글씨

 

오랜만에 만나는 바깥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나와 마주친 순간

눈동자에 달라붙은 활자들

몰랐던 목소리를 쏟아내며 포근히

낯선 분위기를 호흡해요

 

조금씩 숨죽여 다가가

마음에 닿아가

어서 오라고

전하고픈 아랫입술 막아도

툭

툭

흐리게 흐리게 활자가 흐트러져요

 

눈동자에 다 담기지 못해

넘쳐흐르는 마음이면서

굳게 끌어안고서

고이 접어 숨어있었나요

 

무려 그대라는 말이 나로 가득해서

사랑한다는 말이 있어 감사한 오늘

너머도 그대와 함께 보고 싶어요

배재신문  pcnews@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