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팽이

장세민

 

- 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난 어떤 존재일까요?

 

“엄마! 등에 달린 그건 뭐예요?”

“이건 돌이란다. 우린 모두 자신만의 돌을 갖고 있지. 아직 네겐 없지만, 살아가다 보면 너 또한 갖게 될 거야.”

 

엄마 말대로 저도 곧 돌을 갖게 되었습니다.

딸은 제 어미의 돌 팔자를 닮는다던 뭇 어른들의 말씀과는 달랐지만요.

울퉁불퉁하고 거뭇한 엄마의 돌과는 달리, 제 돌은 고른 표면에 탁한 옥색을 띄며 아주 뾰족했어요.

엄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돌을 본 적이 없어 가늠할 순 없었지만, 엄마보다는 크기도 훨씬 작았답니다.

 

그렇게 곧 어른이 된 제 눈엔 서서히 다른 이들의 돌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돌을 잘 감당하고 조절하며 사는 이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삶이란 이름의 주어진 시간 속에서 그저 버티는 것조차 아주 버거워 보였어요.

저 또한 마찬가지로 점점 커지는 이 돌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답니다.

 

애써 버티고 있는 현재의 나를 위해서도, 까마득하게 남은 미래를 위해서도, 뭐든 해야 했어요.

더 나아질 방법을,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만 했어요.

그 까마득히 남은 미래를 포기할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

 

저는 작은 굴을 따라 어두운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빗물 젖은 진흙 벽엔 ‘울적더듬이병을 앓고 있는 돌팽이들의 모임’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그곳엔 아주 많은 돌팽이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저처럼 등에 진 돌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참 많나 봐요.

그들 모두 이 돌을 어떻게 다듬고 손질해야 덜 아플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모인 듯했어요.

뭐 방법을 찾는다기보단, 서로의 무게를 나누는 것에 가까워 보였지만요.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 그런지, 아직은 저들의 돌 모양이 잘 보이지 않고 흐릿하네요.

저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오고 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그들의 돌이 눈에 들어오네요.

다른 돌팽이들을 보고 있자니, 제가 너무 나약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들에 비하면 제 돌은 그리 무겁지도, 뾰족하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은데, 그 모든 것이 제 착각이었던 걸까요?

 

저는 종종걸음으로 지하를 빠져나왔습니다.

무거운 빗방울이 더듬이에 한 방울, 두 방울, 이것 참 꽤 아프네요.

 

지친 저는 불빛을 따라 따뜻한 곳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작은 화분들이 줄지어 있네요.

그중에서도 이 빨간 화분이 아주 맘에 듭니다.

오늘은 어떤 꿈을 꾸게 될까요?

 

아직 밖은 어두운데요.

이상하게 주변이 소란스럽습니다.

 

“재수야.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니니?”

“아, 예. 엄마는 퇴근을 이제야 하셨어요?”

“오늘 야근했어. 빨리 일어나.”

 

아! 저건 ‘사람’이라는 생물이네요.

아무래도 제가 그들의 터전을 침범했나 봐요.

이거 큰일입니다.

저들에게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뭐, 꼭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냥 있어 보죠.

목적 없이 달리는 것도 이제 지쳤거든요.

 

저는 아주 조용히 이곳에 머물며 그들을 관찰했어요.

재수라는 인간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가고 또 비슷한 시간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엔 시체처럼 잠만 잤어요.

 

그렇게 화분 속에 숨어있길 한참,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친 눈빛과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그리고 축 처진 어깨.

제가 보기에 재수는 딱 보기에도 평탄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어요.

사연 많은 돌팽이들을 꽤 만나 본 제가 예상하기로, 재수가 돌팽이었다면 아주 크고 날카로운 돌을 이고 있었을 거예요.

 

오늘은 재수가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네요.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참 쓸쓸해 보입니다.

 

앗. 왠지 재수랑 눈을 마주친 것 같아요.

어라? 이쪽으로 걸어오네요.

 

“뭐야?”

 

들킬까 봐 무섭기도, 한편으론 저란 존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싶기도 했는데요.

막상 마주하게 되니 아주 복잡한 기분입니다.

 

“엄마가 보면 기겁하겠네.”

 

여전히 지친 눈에 짙은 다크서클이 달렸지만, 이상하게도 다정함이 엿보이는 그런 눈빛이네요.

이것 참 의외입니다.

절 발견하자마자 눌러 죽일 줄 알았는데요.

 

“여기 오기까지 참 힘들었겠다. 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에이 그게 뭐 별거라고.

나보다 훨씬 힘든 건 너잖아.

으음.. 근데 사람?

 

“그래도 각자 지고 사는 짐은 다른 거니까. 누군가는 힘이 약해 무거운 돌을 드는 게 더 힘들 수도 있고, 누군가는 통각이 예민해 무거운 돌보다 날카로운 돌을 드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는 거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얼굴을 한 주제에...

 

“나도 참, 너한테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어쨌든 엄마한테 들키지 말고 잘 살아 봐. 난 자야겠다.”

 

그 어떤 돌팽이도 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엄마 돌팽이조차도 제 돌을 무시했죠.

하지만 엉뚱하게도 인간이라는 생물에게 위안을 얻고 말았네요.

 

오늘따라 제 돌이 아주 맑은 옥색으로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어쩐지 가장자리도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왠지 오늘은 정말 좋은 꿈을..

.

.

.

꿈을...

.

.

.

 

“저.. 이제 일어나셔야 할 것 같아요.”

“에?”

“여기 편의점이에요. 새벽에 취해서 잠드셨는데, 제가 이제 교대 시간이라서요. 아마 점장님은 여기서 주무시는 거 싫어하실 거예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오전 8시 정각이었다.

 

“재수야, 이거 대기 찍혀있는 거 네가 했니?”

“아, 네!”

 

카운터로 급히 달려가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일 뵙겠습니다. 점장님.”

“그래. 조심히 가.”

 

문득 그런 말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내가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 나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아니 어떤 존재가 될지는 이 두 손에 달린 것 같아요.

배재신문  pcnews@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