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와 나 

이유림

 

마리모는 내가 본 3년간 잘 자랐는지 모르겠다. 키웠다고 말하고 싶지만, 딱히 먹이를 준 것도, 매일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다. 하루는 어항을 청소해주면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도, 정신 차리면 물을 갈아준 지가 3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마리모를 키우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슬슬 가을이 왔을 때였다. 내가 마리모를 키우게 된 계기는 아마 별 이유 아니었을 거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는지, 뭔가를 키우고 싶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갑자기 반려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동물은 집에서 허락을 안 했고 남은 건 식물뿐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도 나만의 특별한 식물을 갖고 싶어 한 건 기억이 난다. 그렇게 몇 번의 검색 끝에 ‘마리모’라는 수중식물을 찾았다.

 

지금이야 마리모가 유행이지만 저 당시에는 생소한 식물이었다. 난 주변에 마리모를 키울 거라며 신나게 말하고 다녔다. 내가 특별한 식물을 키우는 게 퍽 마음에 든듯하다. 그렇게 주변에 말하고 다닌 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몰랐다.

 

“근데 마리모가 뭐야?”

“수중식물인데 동그랗고 귀여워.”

“갑자기 왜 키우는데?”

“음, 그냥?”

 

내 친구들은 내가 마리모를 키운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절반은 ‘마리모’에 관심이 쏠렸고, 절반은 ‘키운다’에 관심이 쏠렸다. 식물에 밥을 주는 것도, 그렇다고 교감을 하는 것도 아니라 의문을 가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는 평소 이야기를 안 하는 나지만 엄마와는 나름 통했기에 엄마에게 마리모 얘기를 꺼냈다. 엄마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내 기억에는 그렇다. 뭐, 엄마 말로는 아니라지만 난 엄마의 반응이 떨떠름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마리모를 시켰다. 어항으로 쓸 작은 유리병 같은 것도 주문했다. 혹시라도 내 마리모가 심심할까 봐서 내 새끼손톱만큼 작은 병아리 모형 두 개와 마리모 받침대라는 둥글고 딱딱한 모형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가 마리모를 키울 준비는 완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이때부터일 듯하다. 내가 마리모를 반려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생긴 게 말이다.

 

마리모는 며칠 만에 우리 집으로 왔다. 작은 택배 상자를 뜯고 신문지와 에어쿠션을 치우니 내가 주문한 깜찍한 마리모가 들어있었다. 난 너무 설렌 나머지 그날 해야 하는 숙제나 일과를 모두 제쳐 두고 내 마리모의 집을 꾸며주었다. 먼저, 물 온도를 확인해가며 마리모를 살살 씻겨주었다. 그 작은 통 안에서 꾸깃거리며 왔을 내 마리모에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흘려보냈다. 같이 온 유리병에 물을 담고, 크리스털 유리 조각을 바닥에 깔고, 병아리 모형과 받침대를 넣어주었다. 입구가 작은 유리병이라 내 손으로 모형을 컨트롤하기 힘들었기에 같이 온 긴 핀셋을 이용해서 힘겹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마리모를 손으로 동글동글 말아주곤 유리병 속으로 넣었다. 작은 유리병으로 쏙 들어간 내 작은 마리모는 넣고 난 후 얼마간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난 마리모를 주문하기 전부터 마리모를 공부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둥둥 뜨는 건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와서 기분이 좋은 마리모를 보고 나도 네가 와서 좋다며 말을 걸어줬다.

 

난 유리병을 책상으로 가져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하는 모든 SNS에 마리모의 사진을 올렸다. 귀여운 내 마리모를 보고 난 우리 아이를 더 잘 알아야 한다며 인터넷으로 온갖 마리모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미리 말 하지면 내 순수했던 마음은 이 부분까지다.

 

마리모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이런 검색어를 쉽게 볼 수 있다. ‘마리모 사기’ 난 홀리듯 검색어를 타고 들어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일부 마리모 판매자들이 수세미를 동그랗게 뭉쳐서 마리모라고 속여 판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다. 내 마리모가 의심되던 첫 번째 순간. 그때 당시의 내 의심은 아주 작았다. 아주 작고 물러서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는지조차 몰랐다. 어느 순간 이 작은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아주 큰 눈사람이 되었다. 머리와 몸통이 나보다 더 큰 눈사람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댔다.

 

‘저게 수세미라면? 난 수세미를 키운 건가? 수세미를 돈 주고 산 건가? 수세미를 애지중지 키워주고, 열심히 빨아주고, 방까지 꾸며준 건가? 내 반려는 결국 수세미인 건가? 그러고 보니 3년간 키우면서 자라긴 했나? 처음 크기는 몇 센티였지? 내가 키우긴 한 건가? 이렇게 소홀한데 그게 반려인가?’

 

내 마음속 눈사람은 마리모를 키우는 3년 동안 힘을 키웠다. 아니, 마리모를 방치하는 3년 동안 내가 힘을 쥐여줬다.

 

순간 내가 본 마리모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난 이젠 책상 옆 잘 보이는 자리가 아닌 책장 저 끄트머리에 있는 마리모를 찾아봤다. 마리모 유리병 위에는 먼지가 퀴퀴하게 쌓여있었다. 가득 담았던 물은 증발하고 증발해서 이젠 겨우 마리모가 담길 정도였다. 나는 머리끝이 수면 위로 보일락 말락 하는 마리모를 보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굳이 했던 생각은 ‘내가 정말 바쁘게 살았구나’였다. 그냥 그 정도였다. 나에게 마리모란 그 정도였다. 나에게 ‘의심’이 끼치는 영향은 그 정도였다.

 

주변의 지인들은 다들 한 번씩 물어봤다. 마리모는 잘 있느냐고. 난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잘 있는 것도, 잘 없는 것도, 내가 잘 키우는 것도, 방치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리모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있어. 뭐 식물이 잘 있고 말고가 어딨어.”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눈사람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걸 수도 있겠다. 이것도 확실치는 않다.

 

마리모를 산 지 3년 되는 해였다. 슬슬 쌀쌀해지는 날씨에 마음에 바람이라도 들었는지 마리모를 처분하고 싶었다. 갑자기 그랬다. 가족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게 싫었는지, 친구들이 묻는 마리모의 안부에 당당하지 못한 내가 싫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마리모를 처분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리모를 깨끗이 씻겨줬다. 크리스털 유리도 헹궈주고, 조형물들도 닦아주고, 마리모를 흐르는 물에 씻겨줬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리모를 유리병 안에 넣어줬다. 예쁘게 꾸민 마리모 유리병은 처음 마리모를 만났을 때를 회상시켰다. 같은 마리모에 같은 유리병, 같은 소품이지만 내 눈은 달랐다. 볼품없이 식어버린 내 눈은 눈사람에게 애정을 잡아먹힌 후였다.

 

물을 뺀 모든 걸 넣은 어항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뚜껑을 닫았다. 그렇게 3년간 내 반려였던 마리모는 말라 죽었다. 마리모가 외롭지 않게 같이 자란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있던 커다란 눈사람도 말려주었다. 마리모가 고통스러울 만큼 천천히 드라이기로 말려주었다. 눈사람은 물이 되고 다 증발했지만, 아직 내 방 저 구석에는 마리모 유리병이 있다. 추억이나 미련은 아니었다. 그저 치울 애정조차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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