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소설 부문 입선

배재신문l등록2022.11.16 17:32l승인2022.11.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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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희연

세상의 공기는 거짓으로 제 질량을 채웠다고 생각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었으나 귀천은 있었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들의 말마따나 우리는 존중받아야 했음에도 존중받지 못했다. 위선과 가식, 살아있는 것들은 제 질량을 그리 채웠다.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이유도 알만 하니 그러려니 눈 감고 귀 막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은 처음 나를 보았을 때 서울 물 마신 사람이 무얼 할 줄 알겠냐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당신 손의 끝자락엔 바닷바람이 잔뜩 스쳐 지나간 듯 주름과 굳은살뿐 이었다. 한순간에 마음을 먹었다. 당신의 굳은살을 닮고 싶었고, 바닷바람을 잔뜩 맞아 제 방향대로 마음껏 자유로이 뻗어나간 당신의 머리카락이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날 내치는 당신의 거침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당신의 손과 닮아가는 내 손에 밴 그물의 잔향은 삼다수로도 씻어지지 않는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세대를 변치 않고 이어지는 관습 같은 것이라 나는 더욱이 이 자리를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딜 가나 바다 내음이 잔뜩 풍겼고 나는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세상의 공기는 마실수록 거짓된 나를 씌우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바닷바람 맞는 것을 좋아한다. 바닷바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원하다 못해 따귀를 때려왔고 소금 내 맡기도 전 코는 얼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살아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 살아있는 고기를 낚아 그것을 죽이고 말리는 것을 썩 반기지 않아 하는 당신이었지만 온전히 나의 의지였다. 거짓된 공기보다 바닷바람이 좋았다.

바다에 나갈 때마다 기도하는 당신의 아내가 있었다. 밤낮으로 당신의 안전만을 걱정하던 그녀는 ‘안전제일’이라는 글자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갔다. 그렇게 흙이 되었다. 당신은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덤덤한 것이 그녀가 참 서운하겠다고 생각해 내가 다 서운해졌다.

매년 그녀가 흙으로 돌아간 날이 돌아오면 당신은 한글 공부 교재를 식탁에 올리고선 가만히 마당 구석에 쌓여있는 흙더미를 바라봤다. 남들 다 있는 서재는 고사하고 책장 하나 없는 당신이었다. 첫해에는 「그림으로 배우는 첫 한글 사전」이었고 그 다음 해에는 「아기 돼지 삼형제」였다. 흙더미에 잔디가 생기자 당신은 흙더미 가운데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예쁘게 흙을 토닥이지 않아 나무뿌리가 보이기도 했지만 사과나무는 어느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렸다. 그마저 당신의 사랑이구나 하고.

부산물을 트럭 위에 실었다. 화려함 대신 투박함으로 가득 찬 나무 상자 안에 그것을 넣었다. 해산물의 진득함과 사과의 상큼한 향이 대조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당신은 항상 예로부터 의자는 그 사람의 신분과 권력을 상징했다고 줄곧 말해왔다. 항상 ‘미셸 공드리는 의자를 통해 정체성을 이야기했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든 서울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과 함께. 당신의 가르침에도 나는 의자에서 정체성이나, 신분과 권력을 찾지 못했다. 의자는 그냥 의자였고, 찾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그저 그런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실뿐이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다. 나는 지금 트럭 운전석에 앉아있고 평소에는 우리의 작은 배에 더 작게 위치한 의자에 앉아있을 뿐이다. 그뿐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트럭 위에 올라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네 바퀴가 달린 것들이란 모두 동일한 것 같지만, 트럭은 트럭으로 평가받고 세단은 세단으로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리어카와 메르세데스를 동일선상에 두지 않듯, 그들은 선생과 어부를 동일선상에 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거짓된 말들과 공기 사이에서 빠져나온 미세한 것임에도 머릿속 한 편에서 신경이 아예 꺼지진 않았다. 그녀가 흙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이상하게도 한 번도 거짓된 공기 마실 틈 없이 고기를 낚아댔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닮지 않아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적을 두길 바랐다. 당신은 아직 자라지 않은 것들은 바다고 돌려보내면서도 나는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쳐 좋은 사회인으로 길러 보내길 바랐다. 한때 그러기를 희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적을 두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 숨 쉴 곳 없는 적은 공기는 나를 죽인다고 생각했다. 선생이 죽으면 학생도 죽는다. 결국 나는 당신의 굳은살을 닮았고 바닷바람을 잔뜩 머금은 뻣뻣한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을 닮아 직업에 귀천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리어카로 내가 잡은 것들을 끌며 당신과 내가 우리가 되어 함께 바다에 있었다. 퍽 멋있었다.

내가 손에서 분필을 내려놓고 그물을 드는 순간에 귀를 울리던 당신의 고함소리가 떠오른다. 당신은 세상이 말세라고 소리쳤다. 세상이 말세였구나, 세상이 말세였다. 맨 앞 차는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는 꽉 막힌 도로에서 클락션을 울려대는 지금의 나처럼 당신은 클락션을 울려댔다. 하지만 아마 당신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클락션을 아무리 울린다고 해서 도로 위 정체는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득 차 아인슈타인의 말마따나 시간이 상대적으로 흘러 고통의 시간이 더 느려질 따름이라는 것을.

내 손에서 분필 냄새보다 바다의 내음이 짙어질 무렵부터 귓가에서 울리던 당신의 클락션은 한 번도 멀어진 적 없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 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당신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편안했다.

나는 당신을 존중했고 당신도 나를 존중하고 있었다. 나는 도제가 되었고, 당신은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신은 내가 잠시나마 사용했던 나의 교편을 집 안에 보관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하였으나, 나는 교편이, 당신이 사과나무를 심어 사과를 건넨, 당신이 사랑하던 그녀의 아들을 죽여갔노라 차마 말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나의 생을 열어준 은인이 생을 마감하는 사진 앞에 처음 열매 맺은 사과와 말린 오징어를 내려놓았다. 그물과 해산물의 향이 짙게 밴 당신과 내 손으로 탄생시킨 새 삶의 잔향이 하나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의자에 담긴 권력과 신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의자는 그저 의자였다. 내가 도제이고 어부이듯이. 단지 그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어부로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당신은 내게 물려준 작은 배가 나의 생업이 되는 것을 염려하였지만 나는 당신의 걱정을 사양한다. 당신을 닮아가지도 못한 채 책장조차 없는 당신이 식탁에 한글 교재를 쌓아두는 것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자리와 교편과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을 지키다 소식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아무쪼록 고기가 잡히지 않는 바다를 만날지라도 당신이 잘 지내고 있음을 인사한다고 생각하겠다. 당신의 가르쳐준 바다 내음을 맡는다. 당신은 평안할까.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에겐 자식이었던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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