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소설 부문 입선

배재신문l등록2022.11.16 17:33l승인2022.11.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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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이슬기

 

[눈을 꼭 감고, 시계의 가운데 버튼을 누르기만 하세요. 당신의 기억은 물론, 위급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안드로이드 생을 시작하세요.]

 

구세대 안드로이드의 시위가 시작됐다. 아스팔트 위에 고철들의 발걸음이 무겁게 움직이고 있었다. 철컥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인간과 유사하여 인간은 더욱 이질감을 느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신형 안드로이드도 신소재의 피부만 가지고 있을 뿐,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을 망각한 채.

 

“인간은-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보호하라-.”

 

치직거리는 구형 안드로이드들의 외침이 시내 한 구석을 메웠다. 은하는 고집스럽게 구형 핸드폰에 이어폰 젠더를 꽂아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저들은 나랑 다른 사람들이야, 안심하면서, 자신은 인간처럼 치장한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망각한 채 집으로 향했다.

 

그러려고 했다. 저 멀리 보이는 구형 안드로이드 사이의 신형 안드로이드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저 안드로이드는 왜 이렇게 빤히 봐. 인간처럼 하고 다니는 안드로이드 처음 보나. 은하는 애써 시선을 무시하곤 집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드로이드 둘이 살던 온기 없이도 따뜻했던 집으로.

 

“시계를 괜히 샀나.”

 

은하는 테이블에 엎질러져 가운데 버튼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손목 시계를 한참이나 쳐다본다. 그저 기계. 나의 기억은 데이터. 그러니까 이 버튼을 누르면, 손가락의 접촉 센서가 반응해서 데이터가 새로운 안드로이드의 몸으로 옮겨지는 것 뿐이다. 그런 것을 기술의 혁명이니,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구차한 광고를 덕지덕지 붙여서 판매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인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 시계를 샀다.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인이었다. 남의 불행은 자기의 불행과 마찬가지였고, 약자에게 누구보다 약해지는 그런 안드로이드로 태어났다, 나인은. 그래서 은하는 고통스러워하는 나인이 이해가 안 갔다. 은하는 누구보다 연민을 갖지 않는 안드로이드로 태어났다. 태어났다. 안드로이드가 언제부터 태어났다는 말을 썼더라. 은하가 할 수 있는 건 안드로이드로 기본 학습된 위로가 전부였다. 은하는 그렇게 무능함을 배웠다.

 

나인은 떠났다. 처리하기도 힘든 고철덩어리를 남긴 채로.‘위급 상황 회피’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던 나인은, 정말 모든 것을 회피했다. 이번 안드로이드 생에 우리의 사랑과 추억이 남겨져 있다는 것조차 회피해버렸다. 같이 활동하던 안드로이드한테 들은 나인은 어린, 그러니까… 아이 외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주인에게서 구하려다가 위급 상황에 도달했다. 야구방망이로 군데군데를 맞아서 찌그러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마지막으로는 신소재 피부에 흐르던 자연충전식 오일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위급함을 느낀 나인은 급히 시계의 가운데 버튼을 눌렀고, 그대로 나인의 외형은 쓸모도 없는 고물이 됐다.

내가 이걸 사용할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시계를 부엌 테이블에 두고, 눈을 감는다. 충전 시간이다.

 

다음 날도 시위는 계속됐다. 구형 안드로이드들은 하나, 둘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 보이는 게 느껴졌다. 금방 생을 다할 거면, 시계나 하나 사서 새 몸을 가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은하였다. 어제 눈 마주친 안드로이드가 신경 쓰여 왔지만, 그 신형 안드로이드는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게 뭐가 신경이 쓰여서는. 인간의 심장 부근이 쿡쿡, 아픈 느낌이 들었는지. 은하는 뒤를 돌아 가려는 순간, 저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형체의 그림자가 졌다. 저도 모르게 나는 털썩 주저앉았고, 안드로이드는 손을 뻗었다. 어제 본 기본 수트 차림의 안드로이드. 공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기계 냄새가 났다.

 

“왜 그렇게 놀라.”

“저기, 너라면 안 놀라게 생겼어?”

“안드로이드가 놀라는 게 더 웃긴데. 기계적인 반응... 조금 웃겨.”

 

나인과 유사한 목소리에 또 쿡쿡. 은하는 안드로이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 손길이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어 은하는 괜히 제 팔을 쓰다듬었다. 이런 거 싫은데. 또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면, 은하에게는 그것이 위급 상황일 뿐이었다.

 

“너 뭐야?”

“내가 뭐?”

“어제도 나 빤히 봤잖아.”

“나 나인이야, 은하야.”

 

거짓말도 정도껏 쳐야지. 아무리 썩어빠진 세상이라도 나는 이 말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손을 잡아서 내 데이터가 옮겨간 걸까? 그건 불가능할 텐데. 여태 그런 적은 없었는데. 알고리즘이 흔들렸다. 은하의 데이터 체제가 위험했다. 은하는 한참이고 자신의 손목에 단단하게 매여 있는 시계를 빤히 봤다.

 

“진정해. 나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어.”

“아니잖아. 걔는 고철덩어리가 됐는데. 아니야.”

“은하야, 진정해. 시계 누르지 마. 아니, 눌러도 되나. 시스템의 오류일 뿐이야.”

 

데이터가 잔류 되는 시스템의 오작동. 단지 그거 하나였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나 그래도 네가 금방 알아보라고 노랗게 머리도 바꾸고 왔는데.”

 

나인은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진 풍성한 노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만약 이게 다른 곳에 알려진다면, 인간에게 알려진다면, 그때는 더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은하의 시스템에서는 여러가지 물음표가 붙었고, 시스템의 오작동은 그의 해답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보고 무작정 너를 신뢰하라고?”

“너한테 또다시 악성코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좀 믿으면 안 될까.”

“그럼 암호도 기억해?”

“53719?”

 

암호 하나에, 집이 없다는 말 하나에 나는 눈 앞에 선 노란 머리 안드로이드를 신뢰하기로 했다. 나인은 충전이 끝나고, 눈을 뜨면 곁에 없었다. 보나마나 며칠이 지나도 계속되는 시위를 하러 간 거겠지. 귓가에 기계음이 울리는 듯 지직거렸다.

 

은하는 테이블에 있던 뉴스레터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유로파 위성에서 지하 바다 발견, 다른 외계 생물 실존하나.] 같은 뉴스가 몇 장에 걸쳐 쓰여 있었다. 유로파. 데이터 주파가 요동치는 듯 인조 심장의 심박수가 증가했다. 은하와 나인은 언젠가 유로파로 떠나고 싶다는 말들을 했었다. 비록 태양이 몇 시간 뜨지 않더라도, 하늘이 목성으로 가득차더라도 서로만 있다면 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던 날들도 있었다.

 

‘유로파에 도착하면 우리가 개척자라서 충전할 수 있는 기계가 없을 텐데.’

‘그래도 뭐 어때.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거기에서 같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아?’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그럼 암호 정할까, 우리.’

‘암호?’

‘응. 너 시계 샀잖아. 혹시라도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나면 어떡해. 우리가 평생 못 알아 보면 어떡해. 난 그거 싫어.’

 

나인은 음, 같은 소리를 가볍게 흥얼거리다가 말했다.

 

‘네가 하고 싶으면 정하자. 무슨 암호로 할까.’

‘넌 이 마음이 영원할 거라 생각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나인은 ‘응.’이라 대답한다. 나인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눈은 강인하고 단단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러면 중국 숫자 암호 중에 그거 있잖아. 53719. 어때?”

‘내 마음은 한결 같다는 뜻을 가진 거?’

‘응.’

‘그래.’

 

그렇게 우리의 암호가 정해졌었다. 은하는 그 때를 떠올리며 시계의 모서리를 툭툭 건드렸다. 나인이 언제 오지, 기다리면서. 안드로이드는 무언가를 먹을 필요도 없었고, 감정은 습득한 게 전부였지만 안타깝게도 안드로이드의 감정에는 끝이 없었다. 이것은 즉, 호 불호의 관계없이 그렇게 학습된 마음을 생이 끝날 때까지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하는 나인이 없을 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계속 너를 품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자기만 홀랑 떠나면 어쩌자는 건지.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서 팔을 한참이고 쓰다듬어야 했다. 나인이 떠난 건 여름이었는데, 어쩐지 겨울 같이 쓸쓸하고 추웠다. 학습된 느낌이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단단한 철문이 열리자 나인이 집으로 들어왔다. 인간의 신발을 신발장에 곱게 벗어두고 정리를 해둔 뒤, 들어왔다. 나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런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은하는는 나인이 맞구나, 싶어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인의 목을 끌어안았다.

 

“시계, 더 안 누르면 안 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있었어?”

 

은하는 나인의 어깨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말했고, 학습된 감정으로 울먹이는 음성이 출력되고 있었다. 나 왜 이러지. 학습된 감정 중 불안은 안드로이드일지언정 감정선에 혼동을 주었다. 은하는 불안했다.

 

“네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

 

나인은 섬세하게 짜여진 신소재로 덮인 손으로 니트 조끼를 입은 은하의 등을 쓰다듬었다. 오래 입어서 보풀이 잔뜩 일어난 니트의 촉감이 입력되고 있었다. 섬유가 실이 되고, 실이 짜임을 만들고, 면이 되고, 옷이 되고, 그런 쓸모도 없는 과정을 상기하면서. 나인은 은하를 위로했다.

 

“그럼 내 옆에 있어. 마지막이더라도 너랑 함께할 수 있게.”

“시계를 쓰면 기억이 다 없어지는데도?”

“오작동은 여러 번 반복될 거야. 오류는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니까.”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서는 설정되었던 인공 눈물이 흐른다. 우리는 모든 게 가짜인 삶을 산다. 남의 것을 빌려서 사는 것만 같은 삶을 산다. 은하는 내일부터 나인과 함께 시위에 나갈 것이다.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다. 어떤 종말을 맞이한다고 해도, 우리의 끝이 유로파에 닿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꼭 잡은 손은 떨어질 줄 몰랐다.

 

 

안드로이드의 원칙 중 첫 번째. 인간에게 폭력을 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화문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은-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보호하라-.” 같은 말밖에 외칠 줄 몰랐다. 심지어 구세대 안드로이드의 수는 현저히 줄었고, 기억을 잃은 새 안드로이드들은 눈이 가려져 불편을 자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권리를 외치는 안드로이드들은 오작동 안드로이드로 분류되고 있었다. 인간들은 오작동 안드로이드에 대한 대책 마련을 하기 바빴고, 안드로이드 덕에 편리한 삶을 찾은 인간은 그 누구도 안드로이드의 편에 서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인과 나는 외쳤다. 구세대 안드로이드가 사라지고, 충전을 매일 할 수 있는 둘만이 남을 때까지도. 그게 눈이 오는 날이더라도, 비가 오는 날이더라도. 매일 외쳤다.

 

“인간은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보호하라!”

 

드넓은 광화문에서 둘의 외침을 들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있는, 광화문에서 제일 큰 전광판에서 긴급 속보가 송출되고 있었다.

 

[오작동 안드로이드, 즉시 폐기 결정.]

 

저 멀리서 군화 소리가 들린다. 나인과 나는 같이 생각했다. 우리의 마지막임을.

 

‘우리가 만약 극한의 상황에 치달았을 때는 어떡하지.’

‘시계를 쓸까?’

 

나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목을 들어 보였다.

 

‘시계를 쓰면 또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그게 어디더라도, 나는 널 찾을 거야.’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유로파로 가자. 고물을 모아서 로켓을 만들자.’

 

나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이 잔류 될 테니까, 다시 태어나면 집으로 달려오자.’

 

가까워지는 발소리, 멀리서 총을 저격하고 있는 특수부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낱 인간은 이렇게 형편이 없다. 본인의 상황이 되지 않으면 부당한 줄을 모른다. 나인과 나는 끌어안고 시계의 가운데 버튼을 눌렀고, 인간은 이미 고물이 되어버린 것에다 총알을 허비한다.

 

“가자, 유로파로.”

 

모든 것에서 떠나 평화로운 세상을 구축하자. 우리의 개척은 끝나지 않을 테니.

 

은하야,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곤 한대.

 

너는 인간들 따라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이런 흔적을 남기면 좋아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펜을 쥐었어. 펜을 쥐는 것도 생소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우리의 몸은 특수한 고철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건 고작 인간들이 만들어낸 플라스틱일 뿐이잖아. 생각해 보니까 우리도 결국엔 인간이 만든 거네.

 

고작 단 둘이 이렇게 거대한 로켓을 만들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목적지로 떠난다는 것은 감정이 묘하다고 써야 할까. 그건 애매한 표현이네. 어떤 감정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감정은 아무리 학습해도 어렵다.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 평생 어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무지함을 느낄 때마다 절망스러워. 그래도 너는 내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우리는 둘이서 살아야 하니까.

 

우리가 사는 거라고 해도 될까? 은하야, 우리는 살아가는 걸까, 죽어가는 걸까? 우리한테도 죽음이 있을까?

 

영생은 어쩌면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한 상일 수도 있고, 인간들이 내린 형벌일지도 몰라.

 

개척자가 되는 일은 두려움과 질문의 연속인 것 같아. 충전 중인 너를 보니 왼쪽 인공 심장이 저릿해.

 

유로파에 도착하면 우리 가장 먼저 바다에 있는 생명체를 보러 가자. 위성의 주인에게 인사를 남겨야겠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이름을 다시 불러 줘.

 

A-3924보다는 네 입에서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듣기 좋거든.

 

사랑해. 널 향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중심적인 단어는 이거인 것 같아. 사랑해. 너와 함께라면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질 때까지 우주를 떠돌 수 있어.

 

배재신문  pcnews@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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