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수필 부문 가작

배재신문l등록2022.11.16 17:35l승인2022.11.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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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한 쇠고기뭇국

배준영

‘탁 탁 탁 탁’

아주 규칙적인 소리로 도마를 울리는 칼날의 소리가 들린다. 우리 엄마가 뭘 하고 있나 주방 근처를 서성여보니, 아주 둥그렇고 한 손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은 크기의 큰 무를 네모반듯하게 썰고 있다.

“엄마 뭐 해?” “응, 쇠고기뭇국 하려고.” “아.....”

나는 이상하게도 어느 한 날 이후로 쇠고기뭇국은 뭔가 모르게 가슴이 아려와 먹기가 꺼려진다. 특히 추운 계절에 따듯한 국물이 목구멍을 지날 때, 몸이 추위에서 한결 풀어질 때 가장 눈물이 차올라서 괜히 마음이 미묘해진다.

우리 엄마는 기본적인 요리 실력도 꽤 훌륭하신 편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엄마가 끓여주는 소고기가 들어간 국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인생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이라고 할 정도로 엄마의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 외에도 시래깃국, 뭇국 등등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 엄마는 항상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고, 쇠고기뭇국도 일반적으로 끓이지 않았다. 보통, 고기와 무를 참기름을 두르고 먼저 볶는 방법으로 하지만, 엄마는 먼저, 핏물 뺀 소고기를 오랫동안 끓여서 진하고 맑은 소고기 육수를 먼저 내고, 거기에 고르게 썬 무를 넣고 또 오래 끓이는 방법이다. 국물을 호로록 먹어보면 쇠고기만의 고소하고 진한 맛이 느껴지고, 푹 끓여 흐물해진 무를 조심스럽게 입안에서 으깨어 먹으면, 무의 달큰한 맛이 고깃국물에 잘 어우러져 정말 맛있는 맛이 완성된다. 이 따뜻한 국물은 속이 안 좋거나, 추워서 몸이 얼어 있더라도 국물 한 모금이면 모두 나아지고는 했다.

엄마는 그날이 오기 며칠 전에 그날 가져갈 점심 도시락에 국을 어떤 걸로 싸주냐며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엄마의 음식이라면 어떤 메뉴든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그냥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얘기했다. 나는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고 엄마도 그 사실을 잘 알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 아니라도 엄마가 챙겨주는 대로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 좋은 나인 것도 엄마는 잘 알기 때문에, 결국은 엄마 마음대로 쇠고기뭇국을 끓이기로 했다.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무엇을 말하든지, 결론은 똑같지 않았을까?’
메뉴가 어떻게 정해졌든지 말든지, 며칠이 지나 전날이 되었다. 엄마는 음식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저녁 식사 후에, 주방을 떠나지 않고 엄마만의 레시피대로 쇠고기뭇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고기 국물의 고소한 냄새와 무 특유의 시원한 냄새가 우리 집안에 진동했다. 나는 다음 날 나에게 있는 일들을 위해 조금은 긴장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가방을 챙기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방에서 쉬다 은은한 냄새가 내 방에서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엄마가 국물 맛 좀 보라며 작은 그릇에 조금 덜어 주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내일 추위와 긴장감에 얼어붙어 있을 내 위장을 살살 녹일 따뜻함이었다. 분명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맛있는 쇠고기뭇국이었다.
드디어 당일, 2019년 11월 14일이 되었다. 어제와는 달리 아침 새벽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던 날, 그날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내 수능 날이었다. 어느 집이든 그렇듯이 수능 날 아침은 참 고요하고, 무언의 압박감과 부담감이 느껴져 가족들끼리도 그 어떤 대화도 조심스러웠다. TV 속 뉴스에서는 매해 일어나는 수능 풍경에 대한 보도가 다뤄지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며 이제 정말 내 얘기구나 싶어 넋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전날 끓여놓은 국과 따뜻한 밥을 어색하게 넘기고 있는 동안, 엄마는 내 수능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밥 먹는 동안, 국을 담았던 보온 죽통 뚜껑을 열어 놓았더니 국이 살짝 식었다. 아빠가 다시 끓여서 챙겨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말씀하셨고, 엄마도 혹시 또 식을지 몰라 걱정되는 마음에 팔팔 끓여서 다시 죽통에 담아 김이 나는 쇠고기뭇국을 뚜껑을 잘 닫아 도시락 가방에 챙겨 넣었다.
사각 갈색 도시락 가방 안에 꽤 묵직하게 들어있었고, 가방을 건네며 잘하고 오라고 거실 현관까지 마중 나와 내 등을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우리 엄마와 인사하고, 아빠와 함께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시험장은 걸어서 30분도 안 걸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몸이라도 편하고 혼잡한 곳에서 떨지 말라는 나름의 아빠 응원과 함께 아빠 차를 타고 갔다. 차에서 아빠 말투 특유의 무심한 응원도 받고, 그저 터질 것 같았던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교문에 들어섰다. 들어가면서 받은 핫팩을 손에 쥐고 추위를 녹였다. 신기하게도 수능 날은 항상 춥다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살이 오돌오돌 떨릴 만큼 정말 추웠다.

졸려서 눈도 잘 뜨이지 않는 아침부터 열심히 1교시 국어를 보내고,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던 쉬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다음 교시는 수학이었고, 수학을 포기한 사람인 일명 ‘수포자’였던 나에게는 쥐약인 길고 긴 수학 시간을 나름 치열하게 학원에서 배운 대로 문제를 풀었더니 시간이 다 지나있었다.
이제 점심시간,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 엄마가 챙겨준 도시락 가방을 열어보니, 밥과 달걀말이, 멸치볶음이 들어있는 네모난 도시락과 그 옆에 뭇국이 들어있는 죽통과 물병이 있었다. 그나마 긴장 푸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열고 죽통도 열려고 뚜껑을 돌리는 순간
‘도르르륵’ ‘탁’

“어라?”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는 부드럽게 잘 돌아가는 뚜껑이었고, 잘 열리는 뚜껑이었는데, 자꾸 헛돌면서 어긋나는 ‘탁’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침착할 수가 없었다. 정말 당황했고, 열리지 않는 통이 너무 야속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있었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울먹이며 억울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손이 빨개지도록 헛돌아가는 뚜껑을 돌리다가, 나는 뚜껑 열기를 포기해야 했다.
결국 차가워진 밥과 반찬들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면서 물로 넘겼다. 그 점심시간은 정말이지 내 인생 서러운 순간 베스트 순위에 꼽는 순간이었다.

용케 체하지 않은 우여곡절 점심을 먹고는 열리지 않은 묵직한 죽통과 허전한 마음처럼 텅 빈 도시락을 다시 가방에 싸서 다음 시험 준비를 위해 교실로 올라갔다.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중에도 ‘왜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밖에 머릿속에 들지 않았다. 점심시간 이후 영어를 시작으로 남은 탐구 과목들을 정신없이 잘 끝냈다. 이제 숨 막히는 시험장을 떠나 각자 핸드폰과 짐을 챙겼고, 집을 향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교문으로 내려가는 많은 사람 사이에 얌전히 섞여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루 온종일,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 보는 교실 책상에 앉아,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을 겪어 내느라 참 수고했던 날이었다며 스스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중얼거리며 집까지 걸어갔다. 그 추운 날에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을 손에 들고 잔뜩 움츠린 자세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자꾸 쭐렁 쭐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떤 작은 공간 안에서 액체가 움직이며 나는 소리 같았다. 주변도 둘러보고, 짐까지 뒤적이다가 알아냈다. 열리지 않던 죽통에서 들린 야속한 쇠고기뭇국의 소리였다.

‘쭐렁’ ‘쭐렁’
평소에 눈물도 많은 나지만, 그날만큼 많이 운 날이 없다. 그저 국물이 흔들거리는 소리인데,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분명 난 전날 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먹은 그 뭇국인데, 아까 점심에 한 번 못 먹은 것뿐인데, 길 위에서 서럽게 눈물이 났다. 나는 엄마가 나를 위해 끓여준 그 정성을 전혀 모르지 않았고, 미안한 마음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눈가가 촉촉이 젖은 상태로 집까지 한참 걸어가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가 보였다. 잔뜩 지쳐서 그렇게 가볍지 않았던 도시락 가방을 내려놓으며, 엄마 앞에서 눈물과 함께 하소연을 펑펑 쏟아냈다. 죽통이 고장나 국을 못 먹었다며, 아무도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며, 그냥 차가운 밥이랑 반찬만 겨우 넘겼다며. 내가 있었던 일을 다 얘기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나를 열심히 위로했지만, 나는 조금 지나서야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매일 하루에 몇 번씩 가족들이 돌아가며, 죽통을 열기 위해 별 시도를 다 했지만, 그대로 굳게 닫혀버린 도시락은 보름이 지나서야 열렸다. 당연하게도 안에 국은 다 쉬어서 버려야 했다. 그렇게 원수 같은 도시락이 열린 날, 그제서야 엄마는 내게 말했다. 사실 쇠고기는 마트에서 꽤 좋은 등급의 국거리용 한우였다고. 쇠고기뭇국으로 해준 이유는 내가 미역국 좋아하는 건 알지만,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얘기를 미신이라도 얹어주고 싶지 않았고, 수험생 시절을 보낸 자녀가 있는 엄마 주변 지인분들께 수능 도시락을 물어보니 쇠고기뭇국이 무난하니 가장 좋다고 추천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죽통은 너무 뜨거운 국을 넣고 바로 닫으면 그렇게 고장 나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차근차근 말씀해주셨다.

엄마도 아빠도 내 수능을 위해서 몇 년 동안 고생하셨고, 수능 날 아침에도 혹여 식어버린 국을 먹게 되진 않을까 걱정한 마음으로 뜨겁게 끓인 쇠고기뭇국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하셨을 것이다. 나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 국만 봐도 그날, 그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져서 잘 먹지 않게 됐다. 대신 그날 먹지 못한 쇠고기뭇국 한 그릇보다 몇천만 배는 더 큰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배재신문  pcnews@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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