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진(국어국문·4) 주시경교양대학 글쓰기교실 튜터

나는 내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간 때를 기억한다.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운동장에 서서 선생님이 나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앞으로 나란히, 라는 구령과 함께 나는 앞 친구의 어깨선에 맞춰 양 팔을 어깨높이까지 들어올렸다. 팔이 저려왔지만 선생님은 줄이 제대로 맞춰질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란히’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줄은 우여곡절 끝에 맞춰졌지만 저린 팔은 나아지지 않았다. 저린 팔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던 초등학교였는데, 초등학교라는 공간이 한 순간에 낯설어졌다.

국정화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화교과서가 얼마 남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라는 듯 필사적으로 각자의 진영논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영원히 닿지 않을 평행선처럼 자신의 주장을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초등학교 선생님을, 입학식 때의 날선 풍경을 떠올렸다. 미쉘 푸코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을 통해 생체권력을 이야기하며 신체에 접합되는 이데올로기를 말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이데올로기는 종식된 듯 보이지만 아직도 이데올로기는 살아있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우리의 신체를 움직인다. 우리의 선택행위 전반에 영향력을 드리우는 것이다. 권력은 생체를 제어함으로서 자신의 힘을 완성한다는 것이 생체권력의 요지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위들 대부분에는 이데올로기의 논리가 생체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전제되어 있는 듯하다.

국정화교과서는 그의 연장에 다름 아니라 생각한다. 국민의 생각을 하나의 틀에 맞추고,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데 국정화교과서의 목적이 있다. 더 이상 나의 선택은 나의 것이 아니다. 입학식 때 만든 곧은 줄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듯. 줄을 서고 있는, 그리고 그 줄에서 이탈하지 않는 인간만이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런 전제는 줄에서 이탈하는 인간은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나는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줄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벌거벗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어려운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을 적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 두려운 마음을 안고서라도 적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적어 내려가고 있다. 이 행위가 사명감 같은 것은 아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는 영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글을 적는 나는 나의 잘못을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 것은 나 스스로에게 매우 잔인한 일이다.

그럼에도 적는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는 나의 행위가 틀린 것은 아니다. 나와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십여 종의 교과서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역사가 고정된 상태에 있다는 것은 독재 아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재배치 될 수 있다. 교과서를 단일화한다는 것은 역사를 고정하는 것이고, 역사를 고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신체를, 선택을 묶어두는 것이다. 그런 사회 안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서늘한 뒷덜미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든다. 아득한 기분으로 창밖 자주로를 내려다본다. 고개를 숙여 걷고 있는 학생 한명이 눈에 띈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하늘이다. 너무 맑고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