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이 인터넷을 강타했다. 지옥을 뜻하는 영단어 ‘Hell’,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대한민국의 전신, ‘조선’의 합성어다. ‘디시인사이드’의 ‘역사 갤러리’에서 처음 나왔다. ‘조선’의 멸칭이었지만, 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헬조선’은 ‘대한민국’을 가리켰다. ‘헬조선’은 삽시간에 사회로 퍼졌다. “죽겠다.”, “지옥이 따로 없다”,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 헬조선 ‘대한민국’을 메우고 있다.
 

5부작 기획 기사로 연재합니다.
- 노오오오력이 필요해
- 죽창
- 수저
- 헬조선
- 탈조선

▲ 헬조선 지옥불반도의 지도 (출처 = 디시인사이드)

김민수(28·가명)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밤 10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6시에 퇴근한다. 취업을 준비하며 생계를 위해 한 아르바이트지만, 어느새 그의 본업이 되고 있다. 11월이면 그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지 1년이 된다. “처음엔 그냥 붙을 줄 알았는데, 점점 희망이 없어요.” 올해 설날과 추석 땐 고향을 가지 않았다. “가는 돈이 없는 것도 있었죠. 하지만 귀향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어요. 명절 때면 늘 듣는 이야기 있잖아요. 취업은 언제 하는 질문부터 누구는 어디 취업했다더라. 그런 이야기 듣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취업을 준비한 지 2년째, 번화가에 위치한 그의 일터는 인간 군상의 집합소다. 우는 사람과 웃는 사람이 모두 섞였다. 김민수 씨는 “손님들의 대화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다”고 말한다.
“파라솔에 앉아 맥주 마시며 회사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야근 때문에 야식 사가는 손님도 많아요. 복장을 보면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알 정도에요.”

김민수 씨는 편의점 일을 하기전, 중소기업을 다녔다. 6개월을 중소기업에서 일했지만,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기 싫었다.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도 못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됐어요. 면접 본 날 면접관이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했거든요. 출근 첫 주부터 욕을 먹었어요. 이유는 듣지 못했죠. 첫 출근을 할 적, 상사가 제게 그랬거든요. 하는 거 보고 따라하면 된다고. 쉽다고.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곳에서 배운 건 끽해야 커피 심부름 밖에 없어요. 상사 입맛에 맞춰 커피를 타줘야 했거든요.”

김민수 씨는 6개월을 돌아보며 “버텼다”고 말한다. 가장 고역은 회식이었다. 회식은 이틀에 한 번꼴로 이뤄졌다. 상사들은 ‘노력’과 ‘열정’, 그리고 ‘끈기’를 건배할 때마다 매번 말했다. “회사가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더 나아갈 수 있다. 여러분이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이에요. 열정과 끈기를 갖고 노력해야 할 대상을 한 번도 ‘우리’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여러분이라고 말하죠.”

회식 때의 달콤한 말도 잠시, 다음 날 업무로 돌아가면 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회식의 건배사는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공허한 외침은 계속 됐다. “회식 때 부장이 파이팅! 이라고 말해요. 근데 다음날 계장이 저를 혼내요. 이놈 저놈하면서요. 너 이 새끼 어디서 굴러들어왔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김민수 씨의 퇴사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완전히 회사를 그만두기 2주 전, 김민수 씨는 상사에게 퇴사의사를 밝혔다. “오전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죠. 오후에 부장에게 연락이 왔어요. 회의실로 오라고요. 처음에는 안부를 묻더라고요. 잘 지내고 있느냐. 건강은 괜찮냐면서요. 조금만 더 고생하면 주임 달아주겠다면서, 퇴사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말하더라고요. 처음엔 흔들렸어요. 하지만, 그만두고 싶었어요. 퇴사의 뜻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죠. 표정이 돌변하더라고요. 이 업계에서 블랙리스트로 만들겠다. 다른 데서 취업 할 수 있겠느냐. 니가 너무 어려서 세상을 모른다. 이만한 곳이 어디 있겠냐고 말하면서요. 그래도 제가 요지부동이었어요. 그만 나가 보라면서 잘 생각하라고 부장이 으름장을 놓았어요.”

부장의 말은 빈말이었다. 김민수 씨가 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수 씨가 다녔던 회사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김민수 씨가 회사를 다니며 받은 월급은 150만원에 불과했다. 6개월간의 회사 경험은 경력으로 칠 수도 없었다. 김민수 씨는 다시 공채를 준비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느니, 중소기업이 미래라는 말은 이제 지겨워요. 듣고 싶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대기업에 몰리는 이유를 이제 저는 알아요. 뼈저리게 알아요. 복지와 환경, 그리고 급여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죠.”

김민수 씨는 ‘헬조선’보다는 ‘노오력’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무작정 노력하라는 것을 비관적으로 보는 단어다. “저는 지금도 충분히 노오력하고 있어요. 제 집은 고시원이에요. 잠만 잘 수 있어요. 침대가 좁아서 웅크리고 자야해요. 웅크린 채 네 시간 밖에 안자요. 커피는 자판기에서 뽑아 먹어요. 믹스 커피는 너무 비싸거든요. 사는 게 지옥이에요. 미래가 보이지 않죠. 그래서 저는 노오력이라는 말을 보고 반가웠어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뭔지 그동안 몰랐거든요. 근데 노오력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짚어주더라고요. 저는 노력을 넘어 노오력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동안 몰랐죠. 공채 합격만을 목표로 살았던 거예요.”

노오력의 끝은 없다. 노오오력과 노오오오력, 노오오오오력만이 있을 뿐이다. 노오력이 언제 쯤 끝날 것이라고 생각 하냐는 질문에 김민수 씨는 “죽을 때까지”라고 말한다. “기미가 안 보여요. 끝날 기미가 정말로 안 보여요. 공채 합격을 해서 ‘신의 직장’을 다닌 뒤 ‘금수저’가 돼야 해요. 그래야 숨통이 좀 틔겠죠.”

금수저 역시 헬조선, 노오력과 함께 생긴 단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는 말이 유래다. 자신의 소득 수준,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이아몬드수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분류한다. 김민수 씨는 자신을 ‘흙수저’라고 생각하고 있다. “밥 한 번 제대로 사 먹는 것조차 겁이 나요. 모든 가격표들을 볼 때마다, 제가 몇 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지 먼저 계산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어요. 옷을 살 때도 싸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사요. 디자인은 사치가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