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근(정치언론·4) 주시경교양대학 글쓰기교실 튜터

매 학기가 시작될 때면 초등학교는 반장선거로 분주하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이 교단에서 많은 공약을 이야기하는 시기가 이때이기도 하다. 이 기간에는 '선생님께 자유시간을 달라고 하겠다' '학급을 아름답게 가꾸겠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공약부터 '간식을 사겠다' '혼자 청소를 다 하겠다'는 조금은 터무니없는 공약까지 볼 수 있다. 덕분에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반장선거도 학기 초에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볼거리가 된지 오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의 황당한 공약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른들의 잘못된 선거문화가 어린 아이들의 생각까지도 바꿔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 역시 지울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일단 당선먼저 되고 보자’식의 선거문화가 정치와 우리 주변 곳곳에서 흔한 일이 되면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대학도 학생회 선거를 치뤘다. 선거철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선거운동원들이 자주 눈에 띄고 후보자들의 연설이 학교 광장에 울려 퍼지는 시기다. 모든 출마자들의 마음이 항상 그렇듯 자신이 학생들의 선택을 받고 당선되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선이 끝이 아니다. 당선 이후야말로 진짜 시작이다. 성공한 학생회로 남을 것인지, 없으니만 못한 학생회가 될 것인지는 공약에 담았던 후보자들의 초심을 얼마나 지킬 것인지에 달려있다.

실제로 광주에 위치한 한 대학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총동아리 학생회장의 장학금 횡령과 단과대학 학생회장의 장학금 차명 계좌가 문제가 되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심지어 이를 보도한 학보사의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무더기로 없어지는 등 학생회와 관련된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여하를 뒤로하더라도 이와 같은 일들로 학생회가 더 이상 학생에게 신뢰받을 수 없다면 학생회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행이 모든 대학이 이와 같지는 않다. 학생회가 학생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는 대학도 있다. 인천대 총학생회는 2013년 인천대가 국립대로 전환할 당시 2017년까지 5년간 운영비 300억 원을 주기로 협약했으나, 이 가운데 55억 원을 덜 지원한 것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항의한 바 있다. 학생의 이익을 대변해야하는 총학생회의 소임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요즘 선거를 이야기하면서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바로 ‘메니페스토(Manifesto)’다. 유권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달성하기 어려운 공약을 말하는 대신 이행 가능한 공약을 제시한다는 의미다. 지킬 수 있는 약속과 실제적인 이행 방안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는 것이다. 이런 메니페스토에 기초한 공약이 없이는 학생을 위하겠다는 말은 모두 말에만 그칠 공산이 크다.

학생회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들은 다음 학기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학생을 위해 걸었던 공약들을 비로소 그들의 손으로 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도 함께 따른다. 학생을 생각하던 후보자들의 초심과 지금의 공약이 비로소 시험대에 오를 때 우리는 그 학생회가 학생을 위해 일했는지 혹은 자신을 위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성공한 정부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대원칙을 실현한 정부이다. 성공한 학생회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학생회가 되었을 때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새롭게 선출되는 우리대학의 학생회가 이와 같이 성공한 학생회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