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배재 흔적 찾기

배재속의 배재, 연어가 돼 돌아온 배재인 한보라 기자l등록2016.06.23 15:42l승인2016.06.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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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배재라는 역사적인 전통과 브랜드를 달고 우리 대학에 대한 경쟁력이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는 달리 신세대들이 쓰는 인터넷상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08년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서 배재대학교 갤러리를 만든 이후 악성 네티즌들의 횡보로 대학에 대한 비방글이 쏟아졌다. 갤러리 폐해가 심각했던 2010년 5월 31일(월) 배재신문 제362호 여론조사에 의하면 ‘다른 대학교로 편입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란 질문에 80.7%가 ‘있다’고 답했다. 당시 재학 중인 모 학우의 인터뷰에 의하면 단순한 대학 수준으로 편입을 생각하는 학우들에 대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이어 2012년 우리대학 비서실 홍보팀은 명예훼손 실추 혐의로 악성 네티즌들의 글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했다. 당시 경찰조사를 받은 네티즌의 연령대는 평균 1990년대로 대부분 나이가 어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오늘의유머, 일간베스트 등 일부 유머사이트에서는 배재대학교가 금칙어로 지정되거나 관련 글이 대부분 삭제됐다. 그러나 약 4년 넘게 방치된 우리대학의 이미지는 ‘BMW(배재대·목원대·우송대의 속칭)’, 배재를 ‘배제’로 변경하는 등 현재까지 근거 없는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배재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로 진출했을 때 과연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첫 걸음으로 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현재 우리 대학에서 재직 중인 교원을 만나보는 것이다. 학계로 진출한 우리대학 동문 중 모교에 재직 중인 교수진은 총 22명이다. 이에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교수 3명의 인터뷰를 통해 평소 우리대학에 대한 입장과 학우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유아교육과 임현주 교수>

 

Q. 학사는 물론 석·박사까지 전 과정을 우리 대학에서 밟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으십니까? 그리고 어떤 과정을 밟아 현재의 교수님이 되셨는지요.

A. 특별한 동기는 없으며, 그저 우리대학 유아교육과라면 알아주는 명문이기에 오고 싶었을 뿐이에요. 남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제 시야를 넓히기 위해 교양과목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공부에 대한 매력은 대학원 때부터 늘기 시작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석·박사 과정 중 논문 학회지를 10개 이상 썼습니다. 졸업 후 교사에서 원장을 거치며 현장에서 경력을 많이 쌓은 후 대학원에 나왔는데, 그 바탕이 제 인생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길은 항상 열려는 자에게는 열리는 것 같습니다.

Q. 동문으로서 제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저는 교수이기 전에 91학번 졸업생이에요. 후배들이 항상 잘 되기를 바라고 최고이기를 바랄 뿐이죠. 제자인 동시에 후배라 생각하기에 항상 더 많이 챙겨주고 싶어요. 아무래도 우리대학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평소 제자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배재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두루 갖춰서 폭넓은 지식을 겸비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미술디자인학부 회화 전공 이영우 교수>

 

Q. 늦은 나이에 학업을 마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A. 우선은 그림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시대에 식구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내 편이 되어 주신 어머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저희 어머님이 없으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어머님의 믿음만큼 저 또한 하루 24시간 이상 그림만 연구했어요. 남들이 1장을 그릴 때 전 10장을 그려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죠. 무엇보다도 저만의 색채를 찾으려고 무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 둘 제 그림을 알아주기 시작하더라고요. 딱히 우연이나 행운이라 말하긴 어렵다고 봐요. 결국 노력의 결과라 생각됩니다.

Q. 우리대학 미술교육과 1기 졸업생이라 들었습니다. 우리대학의 실질적인 미술 개척자이신 셈이신데, 지금까지 걸어온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어려웠던 점들은 없으셨는지요?

A. 앞서 얘기했듯이 수많은 역경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만큼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앞에서 이끌어 준 선배도 없었고, 여건까지 좋지 않아 여러모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더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오로지 맨 몸으로 뛰었죠. 그러다가 학부를 졸업한 후 미술계의 최고라 일컬어지는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시작으로 대구, 울산, 부산 등 전국구로 찾아다니며 제 그림을 선보였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힘든 시절이었네요.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A. 제자들이자 후배들에게 제가 좋은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봐요.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만이 목표를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간혹 수업을 하면서 우리대학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진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럴수록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이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녀요(웃음).

 

 

< 일본학과 야마나까 미네오 교수 >

 

Q. 타국생활에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모국이 아닌 한국에서 어떻게 교편을 잡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배재대학교는 제가 두 번째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에요. 별다른 어려움은 없고, 지금까지 재밌게 해나가고 있다 생각해요. 제가 일본에서 다녔던 대학원이 우리대학과 국제교류가 있는 학교로 알고 있어서 오게 됐어요. 처음엔 한국의 말과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죠. 특히 언어적 장벽으로 일본에서는 적당히 소통을 하더라도 다들 말을 알아들었는데, 여기서는 100%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어려웠어요. 또한 일본에서는 평균 90명에서 100명 단위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우리대학은 2~30명 단위로 소규모 교육을 하다 보니 학생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해요. 학생들의 기본적인 이름조차 일일이 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색적이었어요. 평소 우리대학에 대한 이미지는 ‘친근감’이라 생각돼요.

Q.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오가며 학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성공 비법이라도 있으신지.

A. (웃음) 매일 공부해서 능력을 높여야 돼요. 특별한 노력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를 했어요.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참여율을 높였죠. 특별한 것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자는 마음가짐이에요.

Q. 끝으로 우리대학 학우들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더 해주세요.

A .특별한 계획까진 없고 선생으로서 공부할 기회를 주신 우리대학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배재만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찾고 있는 중이에요. 저는 일본학과 교수인 만큼 다른 곳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본이란 국가를 잘 알려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외, 특히 일본으로 취업준비중인 학생들에게 더 나은 장을 열어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도 갖춰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관용적인 자세로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넓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해와 배려가 모교에 대한 이미지를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한보라 기자  hbrs1009@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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