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려진 우리민족의 용

배재신문l등록2016.09.22 17:58l승인2016.09.22 18:5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오늘날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인들은 ‘용’하면 중국을 떠올리고, 용 신앙은 중국인들의 고대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알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 용은 뱀처럼 긴 몸통에 사슴뿔을 닮은 뿔과 네 발과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 「용봉문화의 원류」의 저자 왕대유에 따르면 중국 용은 기원 수천 년 전 양자강의 악어 모습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중국 용의 모습은 몸통이 길지 않았고, 악어처럼 튼튼한 네 개의 발과 세 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 진(秦)나라(기원전 2세기)               ▲오늘날의 중국 용

 이러한 모습의 중국용은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몸통은 뱀처럼 긴 몸통이 되었고, 발가락도 늘어나 다섯 개, 혹은 일곱 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 용 신앙에서 일관되게 이어져 온 특징이 있다. 바로 네 개의 발과 발가락을 갖추고 있으며, 암컷과 수컷이 한 몸으로 이루어진 암수동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선조들에게도 독자적인 용 신앙이 있었다. 아래 사진부터 보기로 하자. 이 사진은 고려 태조 왕건이 918년 고려(高麗)을 건국한 이듬해 개성 수창궁과 만월대 앞에 세워둔 용 조각상이다.

▲ 고려(10세기)

 첫 눈에도 두 마리의 용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선조들의 용은 암수 구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 용은 처음부터 머리에서 꼬리까지 몸통 전체를 드러낸 모습을 보여주지만, 우리선조들이 남긴 용 모습은 오직 머리만 조각한 형태이다. 아래는 발해와 조선 시대가 남긴 용 조각상이다. 역시 머리만 보인다. 왜 우리선조들은 용의 몸통을 조각하지 않았을까?

▲ 조선시대 (서울 대서문 성벽)
▲ 발해 시대의 용(서울 중앙박물관)

 그 이유는 우리선조들의 용은 뱀용이었고 뱀용을 수신(水神), 즉 비의 신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뱀은 비가 많이 오면 땅굴에서 나오는 습성이 있다. 그 모습을 본 우리선조들은 ‘뱀이 머리를 내밀고 나오면 비가 온다’고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천하의 근본은 농사이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옛날에는 국가의 안정과 발전은 농사의 풍요에 좌우되었고, 농사의 풍작 여부는 때맞추어 내리는 비에 좌우되었다. 따라서 우리선조들이 성벽이나 땅에 머리만 조각한 이유는 바로 ‘때맞추어 수신이 나와서 비를 풍부하게 내려주기를 바라던 신앙’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용은 근본적으로 중국인들의 용과 달랐다. 우리는 수신으로 뱀용이었고, 중국인들은 악어의 모습에서 출발한 악룡(鰐龍)이었다. 우리의 용은 뱀으로서 암컷과 수컷의 구별이 있었던 반면, 중국 용은 암수동체로서 구별이 없었다. 우리 용은 뱀으로서 발과 발가락이 없었던 반면, 중국 용은 악어 모습 그대로 발과 세 개의 발가락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고대 우리선조들의 뱀용도, 10세기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던 한자 문화의 범람으로 인하여, 그 모습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러서는 중국 용과 우리의 뱀용이 결합된 모습, 즉, 긴 몸통에 발과 발가락을 가진 암수동체의 용이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연구를 통하여, 우리선조들이 10세기 이전에 대거 아메리카로 이동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민족 고유의 뱀용 모습이 아메리카 인디언이 남긴 유적에도 나타난다는 말인가? 왜 아니겠는가! 아래 멕시코 유적에 조각된 용 조각을 보라. 모두 벽이나 땅에서 머리만 내밀고 기어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암수의 모습도 구별하고 있고, 중국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이나 발가락도 없지 않는가!

▲ 벽과 땅에서 기어 나오는 뱀용(멕시코)                 ▲ 암수 모습이 다른 뱀용(멕시코)

                                                    

                                                     (스페인·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


배재신문  pcnews@pcu.ac.kr
<저작권자 © 배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배재신문
  • "우리는 뉴스를 만듭니다"
    배재신문은 건전한 학내여론의 창달 및 보다 나은 면학 분위기 조성과 대학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7년 11월 창간됐다.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배재로 155-40 (도마동) 백산관 307호
대표전화 : 042)520-5265~6  |  발행인 : 김영호  |  주간 : 박윤기  |  편집국장 : 류보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세영
Copyright © 2019 배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