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적이 있었다. 여성주인공인 벨라 스완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에드워드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기에 많은 독자들은 벨라가 이름의 의미 그대로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개의 동화가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또 다른 층위에서 성적인 폭력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늑대인간으로 나오는 제이콥은 자기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벨라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반강제적인 키스를 한다. 그의 행동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나 여성에 대한 배려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남자주인공인 에드워드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그는 제이콥과는 달리 벨라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벨라에 대한 스토커적인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남모르게 침입해 잠자는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기도 하며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이른바 ‘성적폭력문화rape culture’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런데 『트와일라잇』에서 읽을 수 있는 폭력의 양상은 곧 데이트폭력의 모습이다. 물론 데이트폭력은 남성에 의한 것뿐 난 아니라 여성에 의한 남성에 대한 폭력도 포함되는 개념이다. 최근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여성의 44%와 남성의 27.4%가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데이트 폭력은 모욕이나 강요 등 일체의 언어 그리고 신체적 폭력을 일컫는 말이기는 하지만, 성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때 그 피해가 훨씬 더 크고 여성 중 상당수가 성적인 폭력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에 의한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훨씬 더 거칠고 중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이 날로 더해지면서 1366이라는 데이트폭력 전용 긴급전화를 운용하고 있다. 이는 1년 365일에 하루를 더한 번호로 피해자들을 24시간 철저히 보호한다는 의미이지만 그만큼 폭력이 많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학교는 물론 각 대학에서도 교내폭력위원회 등에서 피해자들을 돕고는 있지만 용기가 없거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며 적극적인 대처에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 데이트폭력이 위험한 것은 재범률이 76%에 이를 만큼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대처만이 반복되는 피해를 줄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렇다면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더 거칠어지며 반복되는 것일까? 그것은 극단적인 이기심에 의해서 비롯된 심리적인 장애이자 질병이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트폭력이 연인관계에만 한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용어의 범위를 좁힌다면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들은 사랑을 소유라고 잘못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런 생각을 경계한다. 그는 사랑은 절대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임을 주장한다.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성이 없다. 사랑이라는 그릇된 미명하에 이루어진 폭력도 그렇다. 그리고 어떠한 타협도 그러한 행위로 인해 이루어진 결과에 치유나 보상이 되지 못한다. 폭력의 당사자들이 느끼는 그 순간의 공포나 이후의 치욕감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예의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은 『에세이 인 러브』에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로 사랑의 절대성을 이야기 한다. 사랑은 상대방이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특정인을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는 폭력으로 이어져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영어영문학과 박윤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