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었다고 요? 그래서,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고 요?

배재신문l등록2019.07.10 21:42l승인2019.07.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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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7월 8일자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프랭크 부르니Frank Bruni는 조엘 버켓의 데뷔 소설을 평하면서 비록 그 작품이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했지만 또 다른 이유로 주목을 받았다고 말한다. 자신의 기사제목이 「눈을 감고 글을 써라」Writing with your eyes closed인 것처럼 그는 부르니가 신인작가로서 주목을 받은 이유로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018년 부르니는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게 되는데 왼쪽 눈의 경우엔 그보다 1~2년 전에 완전히 상실한 터였다. 딱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고도 싶었다. 이것이 그가 「들짐승이 모두 마시고」Drink to Every Beast(시편 104장 11절)라는 환상적인 스릴러물을 쓰게 된 동기였다. 그는 이제야 자신이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소설가)나 제임스 서버(미국풍자만화가)와 같은 위대한 눈먼 작가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부르니의 이 말은 조이스와 서버와 같은 뛰어난 작가들이 눈이 멀거나 거의 먼 상태에서 오히려 초월적인 역량을 발휘하게 된 것처럼 자신도 그들과 같이 창의력을 극한까지 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셰익스피어가 아닌 『잃어버린 낙원』Paradise Lost의 작가 밀턴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서사시를 써가면서 완성한 것은 이미 눈이 멀기 시작한 1652년경부터 10년 동안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있다. 그는 남미에서 극단적 모더니즘을 일으킨 작가이자 신비로운 환상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그 역시 시력의 상실해 가는 과정에서 눈이 멀어져가는 것이 어쩌면 축복일 수 있다는 심정으로 『눈 먼 이를 향한 예찬론』“On His Blindness”(를)을 썼다. 이는 다분히 밀턴의 “On His Blindness”를 염두하고 쓴 시일 터이다. 그는 어쨌든 이 시에서 흐릿해져가는 시각으로 자기는 더 이상 “작은 새의 비상飛翔”이나 “황금 빛 달”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호르헤스는 1977년의 한 에세이를 통해서도 눈이 먼 것이 오히려 재능을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작품을 쓰는 소재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굴욕이든, 민망함이든, 불행이든 그렇다. 만약 눈 먼 작가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에게 눈이 먼 것은 소중한 선물이다.” 밀턴을 말했으니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라는 광대한 대서사시의 작가인 호머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호머를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가 혹 여자였을지도 모른다거나 ‘호머Homer’라는 말은 한 특정인이 아니라 ‘바드Bard’처럼 일군의 음유시인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추론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눈 먼 시인이지 않았을까를 추측한다. 역설적이게도 눈이 먼 그/녀/들/는(은) 보이는 현상 이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의 실체를 보았던 것이다. 니나 상코비치는 『톨스토이와 자주색 의자』Tolstoy and the Purple Chair에서 이 말이 진실임을 확인해 준다. 그녀는 “위대한 문학의 목적/기능은 (현상 이면에)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내주거나 어둠속에 숨어 있던 진리를 밝혀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막상스 페르민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프랑스인이지만 일본과 일본문학을 모티브로 하여 ‘하이쿠’(3행 5.7.5 음절의 일본의 시) 형식의 노벨라(중편소설)인 『눈』Neige/Snow을 창작했다. 이 작품에서 ‘눈’雪의 의미를 지닌 유키ゆき라는 주인공은 색채와 하이쿠의 대가인 소세키를 찾아가는데, 그는 놀랍게도 눈 먼 노인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위대한 문학가가 되고자 했던 유키가 깨닫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현상에만 집착하는 눈 뜬 장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눈이 먼 소세키가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눈이 멀었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그가 보이지 않은 이면의 진리(모든 색을 수용할 수 있는 순수 백색)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예는 눈이 먼 작가나 눈이 먼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전개된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주로 눈 먼 작가들의 관한 것이었다면 토마스 포스터는 『교수처럼 문학 읽기』에서 눈이 먼 등장인물을 보며 눈 멈과 진리의 상관관계를 유추한다. 그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거론하면서 오이디푸스는 “눈으로 볼 수 있었을 때 보지 못하고 눈이 멀었을 때 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눈이 보였을 때 ‘통찰력’이 부족했고, 눈이 멀게 되는 순간 그것을 얻게 되었다. 이는 영속적으로 타당한 사실일 수 있는데, 실제로 과거의 많은 눈 먼 작가들은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구현할 수 있는 “천상의 빛”celestial light을(를) 볼 수 있었다.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박윤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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