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로 인한 공포로 세계가 얼어붙어 있다. 모든 것이 마비되고 정지된 느낌이다. 4월이 되었고 꽃피는 봄이 왔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추위와 함께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아직도 “겨울”과 함께 있다. T. S.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표현한바 그대로 지금의 “4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다.”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기에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과 좌절감으로 경직되고 무기력하다. 모두가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고 세계의 시민들도 그렇다. 우리와 그들 모두는 뜻밖의 상황을 경험했고 하루하루 힘든 시절을 버티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공포와 무기력 그리고 힘겨운 일상이 지속되는 이 때 유독 “하나”에 대한 집착은 더욱 더 강해지고 있다. 화장실용휴지에 대한 집착이 그렇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당연히 휴지에 대한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장실휴지를 “낚아채려는” 싸움에 한창인 나라들이 있다. 최고수준의 선진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며 오히려 그런 나라들의 경우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2020년 3월 9일 CNN보도(스코티 앤드류)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고객들이 한 번에 살 수 있는 두루마리휴지의 숫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휴지를 살 수 있는 슈퍼마켓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호주에서는 휴지를 지키기 위해 가게마다 보안요원을 따로 배치해둘 정도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스티븐 테일러는 「팬더믹의 심리학」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공포심에 ‘사재기panic buying’라는 또 다른 전염병에 감염된다고 진단한다. 그들은 텅 빈 진열장을 보면서 자신들도 달려가 무엇인가를 “싹쓸이”할 필요성에 압박을 받는다. 그 마지막에 화장실휴지가 남아있고 그들은 그것이라도 마지막으로 주워 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듯 화장실휴지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챙겨두고자 하는 마음은 공포로 인한 불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것은 아마 화장실휴지가 인간의 존엄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일 수 있다. 일본계미국인 작가인 요시코 우치다가 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진주만공격이후 일본계미국인들의 대대적인 수용소생활에 대한 경험담을 책으로 출판했다. 1982년 워싱턴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한 『사막으로의 추방』이 그것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토파즈수용소’에서 구금되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인간성이 피폐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수용소에서의 격리된 생활이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하면서 결국 삶과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만큼 견디기 힘들고 인간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해치는 것은 압력이나 강요에 의한 구금이나 격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수용소생활에서 생필품은 늘 부족했지만 그건 어쨌든 견뎌야 했고 또 견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화장실휴지의 부족은 참아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녀는 화장실에 비치된 두루마리휴지가 빈번히 분실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난감함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텅 빈 휴지통을 바라보는 사람들로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순간이었고 휴지를 훔쳐간 사람들로서는 저열한 본능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화장실휴지처럼 사소한 것들을 훔쳐가는 행위와 그것의 결과가 결국은 인간성의 피폐와 존엄성을 가장 크게 훼손시키는 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화장실휴지는 어쩌면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