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와 문학속의 팬데믹

배재신문l등록2020.04.07 15:10l승인2020.04.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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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비어드는 「서구문학에 나타난 최초의 팬데믹」이란 에세이에서 문학에서 묘사되고 있는 최초의 팬데믹을 호머의 『일리어드』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 글에서 팬데믹을 신이 내린 징벌로 간주한다. 트로이 전쟁이 한창일 때 트로이의 사제인 크리세스는 자신의 딸이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아폴로 신에게 간청한다. 그 사제의 딸인 크리세이스는 그리스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에게 사로잡혀 노예로서 성적인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이에 아폴로는 역병을 퍼트리고 그에 굴복한 아가멤논은 그녀를 돌려보낸다. 이렇듯 『일리어드』에서 묘사되고 있는 팬데믹은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악한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써의 기능이다. 인터넷 전용 학술잡지인 [컨버세이션]에서 첼시아 헤이쓰는 「호머로부터 스티븐 킹 작품에 나타난 팬데믹: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이란 글을 통해 다양한 문학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 팬데믹을 추적한다. 에세이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호머의 『일리어드』는 물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같은 고전에서부터 동시대 작가인 스티븐 킹의 『스탠드』등이 주된 맥락이다. 물론 그녀가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되거나 강화될 수 있는 범세계적인 인종차별이나 외국인혐오와 같은 비이성적인 광분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문학이 특정한 목적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영역의 인식력을 지니게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는 일상생활은 물론 경제적인 시스템이나 교육제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들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때에 문학은 불안한 현재를 위로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조반니 보카치오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데카메론』이 있다. 흑사병이 돌자 젊은 여성귀족 7명과 젊은 남성 3명은 플로렌스 외곽으로 몸을 피한다. 그들은 한 빌라에 모여 각자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돌아가며 들려주기로 한다. 그것은 팬데믹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립되어 있는 동안 그들은 이야기를 짜내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의 도리나 사랑 그리고 성에 관한 문제에서 무역과 권력에 이르기까지 인생과 관계된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그들은 이야기를 짓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을 이야기했고 시름을 잊었고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회의 구조나 제도 및 개선책에 대해 그리고 급격히 바뀌는 변화와 적응에 대해 그리고 팬데믹 이후 변화될 사회나 그 사회를 이끌어갈 인간의 의식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영국의 메리 셸리가 있다.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인 P. B. 셀리의 아내였다. 그녀는 『최후의 인간』에서 종말론적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보여준다. 라이오넬 베르니는 팬데믹으로 황폐해진 세상에서 홀로남아 목양견과 우정을 나눈다. 20세기 들어 알베르트 카뮈는 『페스트』에서 그리고 그보다 한참 후 스티븐 킹은 『스탠드』에서 모두 팬데믹의 무서움과 그에 맞서는 선한 의지의 인간의 모습을 집중 조망한다. 21세기에는 데온 메이어가 있다. 그는 『열병』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폐허가 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주목한다. 이 작품은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와 닮아 있다. 황폐한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떠난다는 구도와 그 과정에서 아들의 선함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동일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 작품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도 사랑은 지속 있으며 그 바탕에는 개인의 선함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공포는 역사상 새로운 것이 아니며 주기적으로 찾아온 팬데믹의 그것이다. 그것은 마치 에드거 앨런 포우의 『적사병의 가면』처럼 달갑지 않은 손님이고 가면으로 모습을 가린 바이러스의 변형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가면을 쓴 ‘적사병’의 팬더믹처럼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위험하지만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팬더믹이라 한다. 질병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한다. 최소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것이 주는 공포에 비하면 대체로 잘 이겨내고 있다. 치사율도 낮게 관리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광풍이 불자 많은 이들이 1978년의 『스탠드』를 다시 끄집어냈다. 작가인 스티븐 킹이 동시대 작가여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스탠드』에서의 팬데믹의 공포를 절감하기 시작했고 그것과 비교하며 지금의 ‘코로나19’가 가져올 공포에 좌절했다. 그러자 이제 72세의 킹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트윗을 날렸다. “아니, 아니요. 코로나바이러스는 『스탠드』의 팬데믹이 아닙니다. No, coronavirus is NOT like THE STAND. 그건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고,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병입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안전수칙을 잘 따르도록 합시다. Keep calm and take all reasonable precautions.” 문학은 팬데믹에 앞서 팬데믹을 예견했고 팬데믹이 휩쓰는 상황에서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선함의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와 가치가 있는 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문학작품을 저술한 작가는 두려운 이 시기에 우리를 진정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삶의 철학에 대해 논하고 팬데믹과 싸워 이길 소소한 방안을 제시한다. 따라서 그의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고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지금 이 시기, 다시 또 문학이다.

 

미디어센터장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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