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날아드는 마을

서지혜

 

소복이 쌓인 울음 사이로

죽은 할미가 법금법금 울었다

흰 산꼭대기 비탈에 기대어있는 마을 하나

예년만큼 아무도 가닿지 않은

그 골짝엔

까무룩 침을 삼키듯 목을 넘긴 사람들이 많아,

밤엔 뻐꾸기가 날아들었다

거두지 못한 채 버려진 무밭이

머리를 풀어헤친 동학군만 같아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다

돌아올 걸음 없는 마을엔

뒤통수 하얀 어둠밖에 없다

하얘진 두 손 두 발을

품 안에 품고 바삐 울어주는 아비들과

가련한 몸뚱이에 붉디붉은 자국을 흘리곤 했던

어미들의 잔악스러운 손길은 여전했기에

밤은 길었다

게슴츠레 새어 나오는 구더기 같은 한숨이

졸음을 점멸하고

불콰한 저수지는

아비와 어미들의 속내를 끓어내고 있을 뿐

자신의 혈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련한 새의 날갯짓 뒤로

법금법금,

할미와 어미의 울음소리 날아간다

 

 

혼자 서있다

서지혜

 

매끄러운 바닥에서 허적이다가

고개를 들고 마주한 호모에릭투스,

어미의 어미를 닮아

계승의 꼬리를 낳는 행위는 언제나 낯설다

다리를 벌리고 누운 당신은

마치 봉분에 바로 누운 어미와 같다

입술과 입술을 꿰매어

올곧은 진화를 손짓한다

인간 태초의 모습은 당신을 닮아서

아무도 가닿지 않는 문 너머로

거세된 울음이 깨어나기도 전에

까무룩, 가련한 소음을 걷는다

당신에게서 받은 내력은

아귀가 맞지 않는 치아와

당신을 닮아 두 발로 설 수 있는 것 뿐

잠든 아비의 코골이 소리가

무지한 소음처럼 고요를 깨뜨린다

허연 시야에 땅거미 내려앉듯

점멸하는 진통은 모스부호마냥 단단하기 짝이 없어

미적지근한 바람이 비릿한 등을 적실 때마다

어미는 낯선 꿈을 뱉어냈다

멸종되지 않는, 겁이 많은 당신의 걸음걸이

호모사피엔스로의 진화처럼

켜켜이 쌓인 울음이 별안간 다시 침묵,

 

빈 배를 톡톡 두드리며

서툰 습관만 낳는

진화의 새벽이 지나간다

 

아버지, 그 어리석음에 답하여

서지혜

 

차마 물 가로 건져낼 수 없어서

가만히 지켜만 보다가

아련하게 내놓인 채로 달무리에 흘려보냈다

 

나의 아비는 봄날이 되면 가만가만 시를 읊다가

어리고 앳된 계집의 엉덩이를 보며

바지춤을 내리듯 당신의 사상을 내비치곤 했다

문틈으로 비속히 들려오는

비음 섞인 낯선 발길질은 늘 평화로웠고

납작하게 깔고 누운 이불 뒷섶에는

둥글게 말아놓은 퀴퀴한 동정이 숨겨져 있었기에

영락없이 헤실헤실 웃던 그 푹 파여진 웃음과

포개어 맞잡은 두 손은

누구보다 울음에 취약했다

가는 숨을 꽉 움켜쥐곤 했던

아비의 시상은 언제나 당신밖에 없었다

당신에게 물려받은 가계는

사타구니 아래의 거세된 걸음 뿐

물풀 발린 지문처럼 드문드문 붙여지는

색 바랜 손아귀에 부러 잡은 똥이

바닥으로 후두둑, 날릴 때면 어디선가

덜 자란 짐승 새끼의 우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새벽 4시가 되면

세탁비누로 머리를 감곤 했던

익숙한 숙취가 수챗구멍에 걸려

컥컥 소리를 내는 듯

마지막, 아비의 목소릴 들었다

 

밤은 여전히 길었으나

떠나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가만히 눈을 감고 당신의 시를 읽는다

 

 

늙은 사슴

서지혜

 

깨진 아스팔트 위 가지런히 놓인

당신의 발가벗은 울음,

거먼 눈물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더욱 여린 기침 내질렀을지 모르는

냉엄하고도 날카로운 죽음의 의미가

벌겋게 짓뭉게진 살집처럼 나뒹굴고 있다

불콰하게 달라 든 무지한 발길질부터

채 반대쪽으로 건너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새벽처럼

헛도는 구역질이 당신의 생애에 안도했다

네 걸음은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아

감아올린 손아귀는 서투른 숙취만큼 무책임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아릿한 핏내음을 풍겼다

스스로의 죽음에 관대해진 당신의

바닥에 새겨진 새벽의 날,

신원불명의 웅덩이는 고이고

켜켜이 아가리를 찢어 벌린 짐승들이 묻힌다

공회전하는 하루는 소란스럽다

 

저 바닥에 뉘인

이젠 알아보지 못할 짐승의 울음덩이와

별안간 굴러 떨어져 헤 벌어진 웃음을 보라

 

 

누드모델

서지혜

 

불감증을 닮은 시선이 더러운 악취를 풍긴다

윤곽을 지워내지 못하는 붓질의 반복 뒤로

뽀얀 속살 내비치는 저 여자,

둥글게 말린 등뼈 마디마디가

닳아버린 오후의 태양은

땀내 나는 어둠을 비출 뿐

여자는 남루한 신음소리를 걷어내지 못한다

악착같이 벌어내는 울음들은

늘 취기만 손에 잡힐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

맞물리지 못한 시간들과

가릴 수밖에 없는 얇은 천 사이로

시뻘건 망상이 가닿는다

뭉게진 스케치를 핥아내던 빈 졸음

끼익, 시선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여자의 허리에 비릿한 침을 흘린다

다리를 벌려

고단한 젊음을 풀어헤치는 생애

남루하게 벗겨진 살갗 한 오라기가

허공에 흩어진다

시선에서 태어나 시선으로 돌아가는,

알싸한 심해 속에서

닿지 않는 두발은 허우적거리기 바빠

 

여자의 가련한 웃음은

손가락으로 문질러져,

그렇게 수고하셨습니다

 

배재신문  pcnews@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