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밑에 사는 엄마

황지선

엄마는 방이 없다. 엄마는 식탁 밑에서 살았다. 오전에는 할머니 눈을 피해 들어가 살았고, 밤에는 거기다 나를 앉혀두곤 소주를 마셨다. 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내 대답을 안줏거리 삼아 술을 마시는 엄마가 싫었던 나는 몇 번쯤 엄마 가슴에 칼을 꽂았다. 부엌에서는 늘 퀴퀴한 냄새가 났다. 엄마의 냄새였다. 화장품과 향수 냄새가 배어 있어야 할 엄마의 몸에는 언젠가부터 죽음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를 외면하면서도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애썼다. 입에서 나오는 그 냄새가 싫어 엄마를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집 안 화장실 세면대에서 거무튀튀한 담뱃재를 발견한 것은 아빠가 집에 없던 날이었다. 다시 말하면 엄마가 살던 식탁 밑에서 나와 낯선 집을 배회하던 날이기도 했다. 식탁 밑에 살던 엄마는 아빠가 없는 날에만 식탁 밑을 벗어나 집안을 오랫동안 휘젓고 다녔다. 나는 짙은 담배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는 환풍기를 돌렸다. 웅, 하는 시끄러운 소리에도 냄새는 오랫동안 남아 근처에 검은 흔적을 남겼다. 물을 세게 틀자 이내 역한 것들이 씻겨 내려갔으나 그것들은 이미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한 번 알고 나니 몰랐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게 허술했다. 담뱃재가 깔린 화장대, 부엌 전자레인지 위에 있는 담뱃갑.

엄마는 어쩌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제발 눈치채주길 바라며 끈질기게 증거를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끝내 모르는 척을 했다. 엄마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운 나이었다. 내게 덜어질 무게가 두려웠다. 나도 부질없는 악으로 대학교 이 학년을 버티는 중이었다. 시험 기간이고, 사람들은 다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남들과 똑같은 자세로 도서관에서 새벽 세시가 넘은 시계를 확인하고 나면 집에 대한 고민들도 금세 잊혔다. 4.5만점에 4.3 학점. 그래도 나는 만족을 몰랐다. 더 높은 성적이 아니면 필요가 없었다. 장학금이란 단어가 짓누르는 시기였다.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시험이 끝나고 숨 좀 돌리려던 찰나에 이곳저곳 생채기가 난 팔뚝을 보여주었을 때는 말할 수 없는 자괴감에 엉엉하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외면의 대가였다. 수많은 퍼즐이 한 번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잘 끼워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위태로웠던 모양이었다. 떨어진 퍼즐에서는 악취가 났다. 생전 맡아보지 못했던 고약한 향이었다. 화장실에서 맡았던 담배 냄새보다도 더한 향이었다. 무엇부터 집어 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완성된 퍼즐이 어떤 그림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엄마를 이해해야 했다. 이해하고 싶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맘과는 다르게 나는 참 모질었다. 핑계를 대자면 어렸고, 나는 많이 작았다.

어떻게 아는 척해야 할 지 많은 고민이 함께하던 시기였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보여도 되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엄마가 정말 내가 모든 것을 눈치를 챘을 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모른 척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돼, 나는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뭔가를 안다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웠다. 책임이 뒤따르는 일에는 더더욱 그랬다. 친구의 고민 하나도 쉽게 듣지 못하는 나였다. 가족이라면 더 크게 다가올 책임의 무게였다. 짊어져야 하지만 당연하게 견뎌야 하는 무게에도 겁이 났다. 장미향이 나는 이만 오천 원짜리 핸드크림을 계산하면서도 나는 걱정이 됐다.

엄마의 손을 잡았다. 뿌리치는 방법만 알았던 손으로 낯선 손을 잡았다. 어렸을 때 엄마 손에서 나던 화장품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그 자리를 묵직하고 답답한 냄새가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가만히 엄마와 안방으로 들어가 모른 체해왔던 침대 모서리의 담배를 집어 들었다. 엄마의 눈이 커다래지며 잡은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엄마,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에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이건 아닌데.’ 이미 머리는 잔뜩 복잡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한 미로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이 벽 바로 앞이 출구인데, 이 벽만 없애면 출구가 보이는데도 빙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내가 잘할게, 그제야 엄마의 눈에 고여 있던 것들이 무자비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다시 엄마를 이끌어 이제는 화장대 앞에 섰다. 미리 사서 올려둔 핸드크림의 포장을 벗기고 가만히 엄마 손에 짜주었다. 핸드크림의 향이 조용한 방 안에 퍼졌다. 이제는 엄마 손에서 향기가 나고 있었다. 앞으로도 엄마의 손에 이런 향기만 나기를 바라며 나는 엄마의 손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제 겨우 퍼즐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을 뿐이지만, 다 같이 퍼즐을 맞추면 언젠가는 그림이 완성되겠지. 그림 안에는 가족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웃는 미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얼굴이다. 엄마는 아직 식탁 밑에 산다. 그러나 거실에서도, 안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화장품 냄새가 난다. 알싸한 계피 냄새가 나던 부엌에서도. 나는 그 냄새가 아주 오래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