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평론 부문 가작

배재신문l등록2022.09.14 10:40l승인2022.09.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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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그 너머를 향하여

너의 여름은 어떠니

한국어문학과3 유보경

 

1. 안과 밖섞이지 않는 경계

 

모성애조건 없는 헌신과 사랑의 표현을 뜻한다우리는 부성애라는 단어보다 모성애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느껴진다왜 일까이는 어머니라는 사회적 역할이 반영되어 있다어머니는 주로 가족에게 돌봄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위대한 모성애’, ‘자식을 위한 헌신적 모성애처럼 어머니의 희생은 선천적인 듯이 포장한다결국 어머니라는 사회적 역할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통해 화폐관계와 얽히지 않으며경제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그렇기에 위와 같은 모성에 대한 찬양과 찬사가 덧붙여진다아무런 대가없이 희생을 하기 때문에이처럼 가족의 이름으로 포장된 차별은 여성에게 실질적 살림을 요구하고 남성을 주요한 경제적 결정권을 주며한 성()에게만 돌봄과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살고 있지만 가정에 속하는 과 사회에 속하는 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지금보다 몸무게가 더 나간 건 고때밖에 없었다어느 날썰지 않은 식빵을 껴안고 통째로 뜯어먹고 있던 내게티브이를 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소리친 적이 있다그만 좀 처먹어라평소 대화가 드문 집안이라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중략반면 엄마는 내가 무얼 먹든 격려하는 사람이었다지금도 명절 때면 친척들 앞에서 쟤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도 안 마시고 떡부터 먹어요.”라고 자랑하는 여자내가 48킬로그램이든 60킬로그램이든 지금이 딱 좋다고 얘기하는 어미 말이다그렇게 의견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살고한 이불 속에서 시시덕거린다는 생각을 하면 겸연쩍지만.1)

 

아버지와 대화를 거의 해본 적 없는 ’, 그런 내가 들은 유일하고 진지하게 들은 말은 그만 좀 처먹어라가 된다그만 좀 처먹어라이 짧은 한 마디를 통해 사회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아버지는 가족에 속하는 구성원이지만사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인물이다즉 남성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조건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남성 사회에 속경쟁관계에 놓인 여성은 능력뿐만 아니라 외형적 모습이 추가적 사항으로 들어간다다시 말하자면 예쁜 여자그 안에는 날씬한 몸매청순한 분위기 등이 내포되어있다그렇기 때문에 그만 좀 처먹어라라는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한 마디가 탄생한 것이다.

반면 어머니는 라는 존재가 무얼 먹든 격려하는 사람이다여기서 어머니는 사회 경쟁관계에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즉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인물이다그렇기 때문에 48킬로그램이나 60킬로그램은 에서 생활하는 아버지에겐 화폐가치로 계산되지만, ‘에서 생활하는 어머니에겐 단순한 숫자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그러나 가정 안에서 머무는 여성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제의 이항대립적 사고를 극복할 수 없다.

결국 여성이 가부장제 권력 구조의 일부가 된다고 해서뿐만 아니라 현재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와 기회를 획득한다고 해서 가부장적 사고에 저항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단지 남성의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억압받을 뿐이다.2)

 

2. 남성 응시여성이라는 꾸며진 마네킹

 

우리는 왜 날씬해야 하는가과거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은 현재와 다르다과거에는 풍만한 가슴과 불룩한 배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보았다이는 생계가 중요한 만큼 건강하고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하지만 현재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은 소수에 해당한다그만큼 먹거리는 늘어갔고불룩한 배를 가진 여성 또한 늘어갔다더 이상 뚱뚱한 여자는 아름답지 않게 되었다그렇게 현대의 미는 변하게 되었고 관리하는 여자즉 날씬한 여성이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나타난다.

 

오전에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내 근황을 설명하기 싫었고예전보다 뚱뚱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선배는 내가 가장 말랐을 때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선배를 막 좋아할 무렵부터 살을 빼입사할 무렵에야 몸매가 잡혔다선배가 혹 내 얼굴에서 낙오자의 안색을 발견하면 어쩌나 조바심도 났다. (185)

 

는 선배에게 낙오자의 안색을 보일까 조바심을 낸다그렇다면 뚱뚱한 여성은 낙오자이다.’라는 공식을 누가 세웠는가이는 남성의 시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결국 지금까지 흘러가는 미()의 기준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필요에 의해 세워진 것에 불과하다여성이라는 존재는 남성의 시선에 의해 명시되고여성의 정체성은 남성의 응시를 통해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이렇게 남성의 시선에 예속되어있는 여성은 남성의 언어 속에서 맞추어 살아가며여성의 언어로 드러난 사회적 언어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그렇기에 남성이 만족하는 시선에 의해 여성은 옷을 맞춰 입고 마네킹처럼 움직일 뿐이다.

 

뭔 납품회사 다닌 적 있잖아잠깐 하고 때려치운 데거기가 성접대가 장난 아닌데준이가 거래처 사람 그 짓 하는 동안 계산하고 추운데 문밖에서 벌벌 떨며 기다렸단다끝나고 대리 불러 보내려고.”

누군가 우스갯말을 했다.

그걸 뭘 기다리냐같이 하면 되지.”(193)

 

그걸 뭘 기다리냐같이 하면 되지.’와 같이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예속감의 대부분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구현된다고 한다다시 말해여성들은 가부장적 언어가 사실상 모든 의미를 결정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3) 그렇기에 여성은 자신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이처럼 여성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남성 응시라는 가부장적 권력은 무의식 속에 만연해있다즉 남성 응시를 통해 여성은 경제적 계급 안에서도 하위 계급으로서의 억압받는다그만큼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이라는 주체가 여성을 통제하고명명하고권력과 세계를 설명하고 통치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는 것이다결국 가부장제의 남성 사회 속에서 여성은 거래될 수 있는혹은 능력의 척도를 표시할 수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3. 상징계의 어깨 너머기호계

 

사람은 자신의 뒷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곁눈질을 통해 일부분을 보거나 거울의 도움을 받아 드러나는 부분을 살펴본다어쩌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이는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앞모습에 제한된다오히려 어깨 너머의 뒷모습은 정확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이처럼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언어 그 어깨 너머에는 다른 차원의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예를 들어, “괜찮아.”의 언어 자체로 해석한다면 발화하는 사람은 괜찮은 상태로 볼 수 있다하지만 발화하는 사람의 표정억양몸짓 등을 살펴본다면 아니안 괜찮아.’라는 반대되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이처럼 언어 그 자체의 해석이 우리가 바라보는 앞모습에 해당한다면비언어적 요소로 인해 표현되는 영역들은 언어의 어깨 너머에 해당할 수 있다.

(sex)과 젠더(gender)에 의한 생물학적 차이즉 여자(women)를 여성(female)으로 남자(men)를 남성(male)으로 만드는 차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을 오히려 사회적 차이라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4) 다시 말해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성적 차이에 주어진 사회적 의미인 것이다여기서 사회를 구성하는 언어는 가부장제의 영토이며가부장제는 의미가 형성되는 영역곧 언어의 상징계적 차원을 통제한다.5) 이러한 상징계적 언어는 이성이 포착할 수 없는 영역들을 타자화 시킨다하지만 기호계는 가부장제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억압을 가하더라도 기호계를 손에 쥘 수 없다즉 사람의 앞모습이 상징계에 해당 한다면그 어깨 너머에 기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그러므로 기호계를 통해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언어를 초월한다면(sex)과 젠더(gender)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녀석아이 녀석아……친근한 표현인지을 지워버리려는 노력이었는지 알 수 없다선배는 곧잘 나를 녀석이라 불렀다그런 뒤 커다란 손바닥으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줄 때면뭉클하니 아늑해져 까치발을 든 채 더요더요!’라고 외치고 싶어지곤 했다. (184)

(중략나는 선배에게 과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해 머리를 수그렸다선배는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얼마 후물을 마시려 시선을 돌리는 순간선배가 들고 있는 도화지 속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고개 좀 들어이 녀석아.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나는 핫도그를 든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양손 아래로 끈적끈적한 케첩과 겨자소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201)

 

이 녀석아.’이 부름은 여성에 속하는가남성에 속하는가이 문장만을 통해선 알 수 없다다만 발화하는 사람의 억양표정몸짓에 의해 이 녀석아.’는 애정 담긴 언어가 될 수 있고화가 가득한 외침이 될 수 있을 뿐처음 선배가 불러준 이 녀석아.”는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주는 행위를 통해 애정이 담긴 언어로 인식된다하지만 후자의 이 녀석아.”는 나의 감정과 상황선배의 표정과 행동으로 인해 선배와 좋았던 추억을 무너지게 하는 언어로 작용한다이처럼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gender)의 의미를 넘어서 너와 나라는 개인적 측면이 강하게 들어나는 것이다즉 말들이 하나의 의미를 만들며 작동하는 상징계적 차원을 넘어 말하는 순간에 나타나는 감정 및 억양몸짓 등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이루어진 기호계적 차원에 다다른 다면 가부장적 언어와 사고를 넘어설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이렇듯 뚜렷하게 드러나는 선이 아닌 뿌옇게 흐려진 형태까지 수용한다면여성과 남성의 사고방식을 옭아매는 가부장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4. 상상계적 언어로 이루어진 기호계

 

존엄하다생명의 숨결을 뱉는 존재는 존엄하다숨을 깊게 들이쉬고 후내뱉는 순간에도 살아있는 존재는 존엄하다그럼에도 인간은 인종성별종교 등과 같은 이유로 타인을 판단하고규정짓고분리시켜 버린다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그렇기에 아프리카인은 피부가 까맣다미국인은 피부가 하얗다.’와 같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지차별의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 역시 외부적 차이가 존재할 뿐어느 한 쪽에 해당하는 성()이 우월한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외부에 놓인 시선의 집중을 옮겨야 한다개인의 주체성을 담는 내면을 향한 시선으로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내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이는 인간의 태초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언어를 구사할 수 없었던 유아 시절우리는 무엇을 통해 발화 했는가바로 비언어적 발화 양식이다유아는 우오아아!”와 같은 옹알이와 함께 표정몸동작 등을 통해 의미를 형성한다오롯이 온전한 전체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발달6)시켜 엄마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이러한 상상계적 언어를 성인이 된 우리는 기호계적 측면을 통해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을 갖게 되기 전에 경험했던 것들즉 본능적 충동 및 어머니와의 최초의 결합과 무의식적으로나마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7) 하지만 현실은 기호계로 이뤄지지 않는다언어 습득을 통해 상징계에 들어오는 순간 상상계적 언어는 억압받는다그만큼 상징계로의 진입은 진실과 멀어지며결여의 세계로 인도한다즉 상징계적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신념가치편견 등과 같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통치 체제에 억압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말을 건네야 한다태초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그렇기 때문에 말 건네기를 통해 왜 그럴까.’를 생각해야 한다. “왜 남자는 강해야 하나요?”, “왜 착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와 같이 말을 건네야 한다이렇게 언어로 뱉어지는 순간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말 건네는 행위를 통해 성(sex)과 젠더(gender)의 구분이 없는 상상계적 언어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즉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은 채 개인의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는 상상계적 언어를 바탕으로예술이나 문학과 같은 창조적 수단에 기대어 기호계가 존재하는 상징계의 어깨 너머로 접근해야 한다.

 

주석

1) 김애란너의 여름은 어떠니중앙북스, 2009, 180쪽 (이후 작품의 인용은 쪽 수만 밝힘.)

2) 로이스 타이슨비평 이론의 모든 것앨파, 2012, 227

3) 위의 작품, 229

4) 앞의 작품, 232

5) 위의 작품, 234

6) 앞의 작품, 79

7) 위의 작품,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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