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여사의 한 마디.

배준영

 

“아이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허허” “고마워 우리 강아지”

우리 외할머니께서 항상 자식, 손주들을 보면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할머니는 매번 뭐가 그리 감사한 걸까.

우리 엄마가 해주는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항상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벌어진 일을 수습만 하고 사셨던 고생길뿐인 결혼생활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땐 어떤 사람이든 모두 고생을 하고 살았겠지만..

우리 할머니, 그녀의 삶에 대해 손녀인 내가 아는 대로 써보려 한다. 현재 80대이신 경여사님은 대략 10년 전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과 노화로 인한 합병증에 의해 요양원에서 생활한지 어언 3년이 다가오는 듯 하다. 그녀에게 심각한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 평생 논밭을 일구는 일 이외에 동네에서 제일가는 떡방앗간을 하시며 평생을 쉼 없이 바쁘게 바쁘게 사시면서도 슬하에 일곱 남매를 놓으신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무남독녀 외딸이었지만, 사람 좋아하고 인정에 약한 가문의 장남 남편을 만나 사업과 보증으로 인한 빚을 갚아주기도 여러 번, 시골구석에서 안 그래도 많은 식구 살림에, 바깥양반의 손님 식사까지 챙기는 일은 없는 살림에 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쉽지 않은 일을 다 하면서도 주변인에게 베풂은 항상 더 하려는 사람이었다.

일찍이 음악이라는 꿈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첫째 아들, 동생들 챙기느라 어릴 때부터 돈 벌기 시작한 둘째 딸, 달고나 만들다 맨날 국자 태워먹는 사고뭉치 개구쟁이 셋째 아들, 말 잘듣는 넷째 딸, 매일 아프다며 징징대는 다섯째, 형 누나들 덕분에 길게 배움을 가진 여섯 일곱째 아들딸들. 식구가 많은 만큼, 살 부대낀 만큼 속 썩은 일도, 웃긴 일도 참 많았단다.

이렇게 가난한 집에 식솔이 많아서, 주변에 자식이 없는 부잣집에서 수양딸로 보내면 안되냐는 농담 섞인 진담에 경여사는 내 새끼라 절대 반대했건만, 사실상 의젓한 첫째 역할로 동생 보는 데에 지치고, 치여서 온전히 사랑받고싶던 넷째 딸내미가 겁도 없이 따라가놓고는, 엄마가 보고싶어서 반나절 만에 돌아왔단다. ‘이놈의 자식아 뭐 그리 잘해준게 있다고 돌아와, 돌아오기는.’ 일곱 손가락 깨밀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아닌 척 까맣게 타들어간 아이의 속사정을 알아버린 다재다능 딸내미는 그때부터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훗날 그 아이가 험난한 직장생활을 지나, 모두가 우려하는 눈빛이 어린 결혼을 하고, 살면서 고생이라는 고생을 하면서 당신의 병수발마저 다 들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듯, 여느 날과 같이 바쁘게 일하다가 자꾸만 속이 메식거리고, 눈앞이 핑글 돌더만, 정신 차리고 보니 큰 병원에 실려 와,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아직 콩밭도 메야하고 떡도 뽑아야 하고 할 일이 참 많은데... 집에 가서 자식들한테 줄 것들이 밭에 수두룩인데, 경여사의 보호자 신분인 딸과 주치의는 입원 얘기가 오가고, 수술 얘기도 들리는 듯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가, 며칠 후 많은 짐과 함께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여러 검사와 치료, 수술과 이어지는 입원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거 참. 분명 치료도 하고 시골에는 돌아왔으나 완치가 아니었기에, 홍길동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지던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더라.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왜이리 말은 더뎌지는지. 애도 아니고, 밥 먹는 중에 뭘 자꾸 질질 흘려대는지. 그런 몸을 움직이면 더 나아질까 밭에 나가 자그마한 일거리라도 해보다가 자꾸만 줄줄 흐르는 식은땀과 금방 숨이 차서 힘듦을 그제서야 느끼기 시작했다. 투병 중 밉지만서도 남편으로서 정이 콕 박혀버린 할아범도 편찮으시다 떠나버리니 여러 슬픔과 본인 몸이 아픈 것에 누구를 탓하지 못하는 원망스러움도 마음속에 점차 자라났다.

그런 경여사를 달래려 자식들도 바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종종 찾아와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단풍 구경에, 전국을 돌아다니다 못해, 중국도 가보며 자식들 집구경 또한 신나게 하셨다. 키울 때는 가난해서 미안한 마음뿐이더니, 각자 가정 충실히 세워서 잘 사는 걸 직접 보고는 마음이 한결 잔잔해지셨나보다.

혼자 지낼 수 없어, 일본에서 몇 년만에 돌아온 첫째와 살면서 생기는 일에는 밥 준비하려고 냄비 올려놓고 까맣게 태워버리는 건 예삿일이며, 자꾸 기억에 오류가 생기는 듯했다. 외에 여러 사정 탓에, 요양원에 들어가 지내셔야만 했다.

다른 어르신들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과 괜히 이곳에 버려진 것만 같은 마음, 새로운 사람과 낯선 모습만이 눈앞에 일어나기에 거부감이 정말 많으셨다고 한다. 그 탓인지, 첫 몇 달 간은 오히려 상황이 나빠지기만 했다. 후에 점차 도움을 받아야하는 현실을 느끼고 받아들였을 때부터 주변 할머니들과 친해지며 적응하셨다. 그러나 시련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의 시작과 면회 제한.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재미는 있지만, 말 못할 서러움도 있는 이 노인네에게 가장 큰 웃음과 기쁨을 주었던 가족들도 못 본다고 하니 형언할 수 없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을까. 1년 정도가 지나 아주 짧게나마 아크릴 벽을 사이에 두고 면회가 가능해졌다. 몇 달에 걸쳐 일곱 남매가 번갈아 경여사를 찾으면서 10분이라는 면회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많이 줄어든 내년에 외출과 외박을 기약하며, 오늘은 넷째 딸과 사위, 손녀를 잠시잠깐 보고 아쉽게 다시 보내야했다.

경여사님의 삶은 사실 이보다 한참 더 길겠지만, 엄마에게 들은 것과 내가 직접 본 것으로만 써보아도 그리 평탄치 않음이 느껴진다. 어렸을 적 주름살은 많았지만 나름 팽팽했던 할머니의 모습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말라가고, 내가 클수록 할머니는 점점 왜소해지셨다. 병세가 있으신 이후로는 더더욱이.

그런 경여사를 옆에서 많이 챙겼던 넷째, 우리 엄마는 종종 할머니와의 옛날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고는 한다. 지금껏 들었던 모든 일을 시간순대로 할머니의 젊은 삶을 슬쩍 엿보다보니, 아주 조금, 정말 조금씩 할머니의 그 말들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경여사님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의 대상과 의미에 대해 나의 짧은 인생 경험에서 몇 가지 생각해보았다.

자식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되어 예쁜 가정을 꾸리며 자신에게 그 행복을 나누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어릴 적 살림의 가난으로 인해 못 해준 것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돌려받은 것에 대한 감사는 아닐지.

바쁘게 사회인으로 살면서도, 시간 내어 시골구석 요양원에 있는 성치 못한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것에 감사하는건지.

손자들은 나름 무뚝뚝하지만 또 듬직하게, 손녀들은 예쁘고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귀염떠는 애교쟁이로, 모두 착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감사는 아닐지.

어쩌면, 하루 하루 눈을 뜨고 새로운 기억을 써내려갈 수 있게 주어진 이 순간에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많은 추측을 해보지만, 경여사의 마음 속, 심해보다도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말들에는 그저 한낱 어린이 수영장 깊이밖에 되지 않는 내가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무리인 듯 하다. 아마 시간이 지나, 내가 60여년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할머니가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하듯, 나도 할머니께 감사한 일이 많다.

편찮으시기 전까지 열심히 땀 흘리시며 만들어주신 많은 떡과 쌀, 많은 채소 등 헤아릴 수 없이 커다란 사랑을 지금껏 받았기에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듯 합니다.

오늘도 할머니가 저희 가족을 보며 기분 좋게 허허 하면서 웃는 모습 보여주셨기에 한결 마음 놓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뎌진 말이라도 “고마워요”라는 말을 해주셔서 제가 더 많이 감사합니다. 우리 할머니라서 감사하고, 우리 엄마의 엄마라서 감사합니다. 매일 고맙습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우리 경여사님.

배재신문  pcnews@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