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시 부문 당선

강민재, '술' 외 2편 배재신문l등록2023.11.16 17:53l승인2023.11.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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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재

어느 늙은 시인에게 잘 익어 서러운 술을 대접하고 싶었다
눈이 백석(白石, 白奭) 같이 내리는 밤, 사슴 한 마리가 슬프게 우는 날에
밤이라도 구워먹을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헌이라든지 신이라든지 모두 바치고 싶
은데
그 늙은 시인이 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타닥거리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눈의 고장처럼 덮여 도시의 때를 다 씻을 것만 같았다


늙은 시인은 신선 같이 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게 타닥거릴 것이다
“술은 곱게 써야한다, 곱거나 쓰기만한 술은 잘 익은 술이 아니거든”
나는 잘 익은 술이 없어 서러워지고
도시에서 받은 술을 늙은 시인에게 대접하며 말할 것이다
“도시에서 가져온 술입니다, 이것 밖에 없어서...”
그러면 늙은 시인은 또 신선 같이 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게 타닥거릴 것이다
“허망할 정도로 곱구나, 입맛을 버리게 될 정도로 달달해”
그러고는 잘 익은 옛 막걸리 하나 꺼내어 잡수시며 내게도 권하실 것이다


그러면 난 막걸리가 잘 익어 서러워지겠지
도시의 술은 곱기만 한 술이라고 여기며 확신하게 되겠지
그러나 늙은 시인에게 더는 잘 익은 막걸리를 받을 수 없어
늙은 시인은 눈처럼 쓸쓸하게 녹아가고
잘 익은 막걸리도 결국 눈의 고장과 함께 덮여버릴 테니까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고
모가지를 잃은 사슴처럼 슬프게 울었다


눈의 고장이 닫히면
잘 익은 막걸리도 늙은 시인도 영영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나무는 깃털을 떨어뜨려야한다

강민재

깃털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새의 깃털
그리고 어느 새가 힘차게 날갯짓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밤에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어떠한 상념 속에 나를 빠뜨렸다


썩어가는 나무, 햇빛을 받지 못해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나무에게서 나 자신을 보았다
연민을 보았다, 그러자 내 주위를
하염없이 둘러보아야 했다
그때 떨어진 깃털 한 조각이 보였고
그것이 새의 투쟁을 나타내는 듯 했고
나는 용기를 얻으며 다시 나무를 보고는 이런 시를 지었다


태양은 떠오를 수밖에 없고 내가 날갯짓을 계속한다면 결코 썩지 않을 것이다, 몸
이 부서져라 날갯짓을 해라,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깃털 하나 남지 않게 몸부림을
친다면 너는 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새처럼


이런 시를 짓고는
다시 나무를 봤다

 

시골

강민재

  어릴 적 나는 도시에서 변두리인 시골에서 살았다 설렁탕 배달하던 어머니의 차에서 창문을 열고 풍경의 지나감을 바라보노라면 소똥 냄새가 튀어나왔다 시골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는 예감이었다 나는 소똥에서 흙으로 그리고 흙에서 자연으로 튀어나갔다


  도착한 그곳은 시골의 중심 세월을 머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곳 거기에도 사람 사는 것이 신기했다 시골의 변두리인 내가 사는 집에서도 낯선 곳 나는 전래동화 속 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의 집으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배달 일하는 어머니와 나를 반갑게 맞이하시며 배달 일도 쉬엄쉬엄하라고 시골의 중심이라 먼 길이었을 텐데 같이 설렁탕 먹자며 집안으로 오라고 하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싫었던 어머니는 거절한다 거절하고 나를 차에 태우며 시골의 중심에서 도시의 변두리로 나아간다 할머니 할아버지 막걸리 냄새가고소해서 좋았다는 나에게 대낮에 막걸리하며 시간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쁜 거라고 막걸리도 시골도 다 나쁜 거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지긋지긋한 배달 일 때려치우고 조만간 도시로 나아갈 거라고 과거에는 참 나쁜 사람이 많았다고도 덧붙인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화나셨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이해하게 된 건 나중이다


  어머니는 부끄러우셨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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