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강민재

  모두 신발 탓이다. 신발, 내 가난처럼 헤지고 작은 탓에, 죄인처럼 조심스레 걷게되고, 여기 모든 문제의 핵심이 있다. 죄이는 신발, 가난처럼 헤진 신발은 죄이고, 그것도 원죄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부모님께 이 신발을 물려받았고, 그래서 서럽다. 신발 하나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 부모님은 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나를키웠는데, 나는 쓰레기봉투만 보면 걷어차는 버릇이 있고, 거기서 약간 희열을 느낀다. 터지도록 걷어찼을 때 속이 터져나가는 느낌, 그걸 표현하는 게 내 저항의 방식이니, 오물을 뒤집어쓴 신발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도 상관없다.

  물려받은 신발은 보통의 노력으론 바꿀 수 없으니, 다른 노력의 방식을 생각해냈다. 돼지 같은 녀석, 녀석이 내 신발을 욕한 건 불과 며칠 전이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거기서 모멸감을 느꼈다. 거리를 죄인처럼 조심스레 걸을때였다. 녀석이, 그렇게 초라한 신발을 신으니 굼뜨게 걸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하며, 그런 신발로는 레드카펫을 걸을 수 없고, 거친 비포장도로에나 어울린다고 했다.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며 녀석의 말을 듣던 나는 녀석의 신발을 봤다. 레드카펫을 걷기에 더없이 적합한 신발 같았다. 순간 신발이 더욱 조이는 게 느껴졌고 영원한 비포장도로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영원한 비포장도로를 걸을 수는 없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어떤 위기감이 나를 생각하게 했는데, 녀석의 신발을 죄인처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신발을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그래! 신발을 내 것으로 하면 되잖아? 다른 방식의 노력을 생각해냈다. 훔치는 거야... 녀석의 신발을 훔치고 내 신발을 녀석에게 넘겨주자는 생각을 했다. 그럼 녀석을 골탕 먹이면서 내 신발을 건네줄 수 있으니, 누구나 그런 신발을 받으면 죄인처럼 걸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녀석이 죄인처럼 걷는 모습을 상상하니, 강한 희열감이 느껴졌다.

  녀석에게 아첨하기 시작했다. “신발이 정말 멋지구나!” 그러면서 녀석의 집에 가서 신발 구경을 좀 시켜달라고 했다. 녀석은 동의했다. 흔쾌히, 저녁에 오면 여러 켤레의 신발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고 아직 뜯지 않은 새 신발까지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아직 뜯지 않은 신발도 있다니. 나는 허탈해졌지만 이내 정신을 되찾고는 녀석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저녁에 녀석의 집으로 향하며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첨을 하다니! 모든 게 신발 탓이라고 생각했고 쓰레기봉투를 걷어차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신발로는 녀석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최대한 깨끗하게 신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녀석에게 가는 길에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걸었다. 그게 녀석에게 덜 얕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같은 위치의 사람을 상대하려면 겉모습이라도 그 사람만큼 멀끔히 꾸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그 사람은 내 멀끔한 노력의 가난함을 알아보겠지만, 최대한 멀끔하게 꾸며 그 사람을 상대하고 부를 강탈해야 한다.

  녀석의 집에 들어섰다. 녀석은 신발장에서 나를 맞이했다. 그러면서 신발장에 앉아 새 신발을 가져오는 동안 기다리라고 했다. 서러워졌다. 녀석이 집안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게 내 가난처럼 헤지고 작은 신발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녀석이 새 신발을 가져오는 동안 신발이 죄이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더 이상 비포장도로에나 어울리는 신발을 신지 않으려고 녀석의 집에 들어선 거지...

  녀석이 신발을 가져왔다. 상자에 들어있는 새 신발을 난폭하게 커터 칼로 뜯는 걸 보며 격분했다. 신발의 부유함을 감사할 줄도 모르다니! 그렇지만 기회를 엿봐야했고 쓰레기봉투 차듯 격분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 녀석의 새 신발이 번쩍이는 걸 봤다. “이건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만든 신발이야.”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발을 강탈하는 게 정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이 새 신발을 보여주고 나서 헌 신발을 보여줬다. 새 것처럼 광이 났고 레드카펫에 어울리기 그지없었다. “신발 하나만 주면 안 돼...?” 순간 정신이 팔려서 나도 모르게 지껄였다. “신발 하나만 주면... 너를 은인으로 여길게...”

  녀석이 경멸하듯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네 발 사이즈에 맞지도 않을 텐데.” 녀석은 다소 겸연쩍게 말했던 것 같다. 부끄러워서 녀석에게 잊어달라고 했고 녀석은 다만 한숨 쉬며 값비싼 신발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듣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다니! 비참하게! 신발 하나 달라고 녀석에게 구걸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저 돼지 같은 놈에게! 못난 사람처럼 구걸하다니!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맺힐 듯 했다. 다 신발 때문이야... 신발...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생각을 내뱉은 것 같았다. 녀석이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녀석이 다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고 다 소개했으니 이제 집에 가라며 나를 떠밀게 되었다.

  멍하니 신발장에 앉아있자 녀석이 또 한숨 쉬며 내게 말했다. “거실에서 TV를 볼 거야. 마음대로 해.” 그러고는 집안으로 사라져버렸고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축구 소리. 관중의 응원 소리와 전문가의 중계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신발이구나... 축구선수들이 값비싼 축구화를 신고 레드카펫을 걷는 상상을 하니 서러워졌다.

  정신이 들었다. 저 돼지 같은 녀석의 신발이라도 훔쳐야 한다. 그게 레드카펫을 걷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 신발은 보통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조금이라도 레드카펫에 가까워지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녀석의 신발을 훔치는 것 같은, 사람 같지도 않다고 욕먹을 만한 짓을 거리낌 없이 해야만 한다.

  그런데 녀석의 “마음대로 해”는 무슨 뜻일까? 문득 생각났다. 마음대로 하라고? 뭘? 생각을 하다 이내 어떤 결론에 다다랐는데 나는 감격했고 녀석의 깊은 배려를 알아챈 것만 같았다. 신발을 훔쳐도 된다는 거구나! 그래!

  가만히 신발을 훔쳐도 탓하지 않겠다. 거실에서 TV 소리로 다 덮어줄 테니 너는 도둑질을 하고 평생 은인으로 모셔라. 그런 배려라니 천사가 틀림없다. 녀석의 신발을 훔치고 내 신발을 주겠다는 계획은 포기했다. 녀석의 깊은 배려에 맞지 않는 생각인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신발도 이렇게나 많은 걸... 신발을 두고 가도 절대 신는 일은 없을 거야... 녀석은 평생 비포장도로를 걷는 일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순간 녀석의 앞날에 레드카펫이 가득하길 바랐고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다는 생각을 했다.

  짚이는 신발을 아무거나 가져가기로 했다. 그게 녀석에게 바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며... 신발을 고르다니... 안 되잖아... 이렇게나 나를 배려해주는데...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손을 뻗기 시작했다.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고 레드카펫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그때 녀석이 비포장도로로 끌어내리듯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하는 거야!” 정신을 차린 나는 녀석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머리를 숙였다.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신발을 도둑질 해!” 나는 도둑질하는 게 아니라고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네 신발은 벗고 가! 그리고 밖에 나가서 이 쓰레기봉투나 버려! 그게 벌이야! 그렇게 하기 전엔 네 신발을 찾으려 돌아올 생각은 하지도 마!” 얼떨결에 신발을 벗고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망연히 앞을 보며 녀석이 준 쓰레기봉투의 의미를 생각했다. 아아,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만도 같았다. 내 신발도 잃고 쓰레기봉투만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발이 시렸고 가난처럼 헤지고 작은 신발이 그리워진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문득 발걸음이 옮겨지는 게 느껴졌다. 신발을 되찾자. 그러고는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