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현대예술의 신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사망하다.

오준영 기자l등록2016.01.29 18:58l승인2016.01.3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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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9일 한국이 낳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사망했다.

 

백남준은 1932년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 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작곡과 음악 사학을 공부한 백남준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뭔헨대와 쾰른대학교에서 건축, 음악사, 철학을 공부했다. 특히 피아노를 부수거나(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 바이올린을 파괴하는 등(바이올린 솔로) 파격적인 음악 퍼포먼스를 선보인 그의 모습을 독일에서는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유학을 마친 백남준은 일본에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예술 활동을 보여줬다. 당시 뉴욕을 첫 방문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해 곧바로 그 영상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 공식으로 선보인 비디오 아트의 서막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은 음악에 성적인 코드를 넣기 위해 나체의 첼로 연주자를 촬영하다가 경찰에 체포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결과 예술 현장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이 개정됐다. 그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의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끊임없이 활동하고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닌 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광주 비엔날레에 크게 기여했다.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명성을 떨쳤다.

비엔날레가 끝난 뒤 백남준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한국은 모국이나 고향의 느낌은 없었다. 그런 정서는 없었다. 한국은 그저 자신의 예술 무대일 뿐이다. 특히 "애국하면 나라 망한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자서전 『태내기 자서전』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나는 물었다. 한국은 무엇인가요?

나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너의 나라가 될 거야. 나는 물었다. 왜요?

엄마가 말했다. 이유는 없어. 나는 물었다. 큰 나라인가요?

엄마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선진국인가요?

엄마는 말했다. 아니, 뒤로 가는 나라란다. 나는 말했다. 난 태어나지 않을래요.

엄마가 말했다. 그렇지만 약한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단다.

나는 말했다. 왜 한국을 선택한 거예요?'

그에게 조국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국하면 나라 망한다고 말했던 그가 그 누구보다도 나라의 애국하고 한국의 위상을 올렸다.

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모두 마비됐다. 그러나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1996년 독일 <포쿠스 Focu>지의 '올해의 100대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1997년에는 독일 경제 월간지 <캐피탈 Capital>이 선정한 '세계의 작가 100인' 가운데 8위에 올랐다. 같은 해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 문화원이 비독일 국민에게 주는 '괴테메달'을 받았다. 또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98 교토상'을 수상했다.

끊임없이 활동을 하던 백남준은 미국 마이애미 자택에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됐으며, 2008년 한국에서는 그의 공로와 업적을 기르기 위해 경기도 용인시에 백남준 아트센터가 공식 개관했다.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가 된 것은 새로운 미디어인 비디오를 사용해서가 아닌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인 시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새로운 예술을 찾아 변혁을 꿈꾸고,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졌던 예술 탐험가 백남준이 2006년 1월 29일 사망했다.

 


오준영 기자  ojy0533@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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