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을 지켜주세요

김현곤 기자l등록2016.04.23 23:55l승인2016.04.23 11:2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지 103일 째 되던 날. 배재신문은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벚꽃이 피고 질 만큼 따뜻한 봄이었지만 밤은 서늘했다.

파란 점퍼를 입은 학생들과 벽을 수놓은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소녀상 곁을 지켰다. 맞은편엔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섰다. 저녁시간, 소녀상 지킴이들은 돌아가며 식당을 오갔다. 식사는 시민이 후원한 식권으로 해결했다. 식당은 소녀상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빨간 팔레트를 여섯 개 놓고 그 위에 스티로폼, 전기장판과 담요를 순서대로 덮어 한기를 막았다. 세 평도 안 되는 조그마한 자리가 경찰이 학생들에게 허락한 공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이 늘었다. 모두 파란 점퍼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시민이 후원한 파란 점퍼는 마치 소녀상 지킴이들의 정체성 같았다.

배재신문이 농성장을 찾은 4월 10일,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세월호 참사 2주기 새내기 선언' 팸플릿을 접었다. 팸플릿을 접는 중간 중간 시민들이 찾아왔다. 시민들은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중 일부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나라의 자랑이다", "어른들이 미안하다"며 응원을 하고 갔다. 게 중에는 "현금이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다"며 후원금을 주기도 했다.

경찰 버스 엔진소리가 귓가를 계속 때렸다. 저녁을 견디기 위해 틀어놓은 발전기 소리는 버스에 묻혔다. 경찰들은 맞은편에서 교대로 일본 대사관을 가린 공사벽을 지켰다. 대사관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공사벽이 서 있는 건 소녀상 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공사벽 구석에 만든 작은 문을 열고 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천막이 보였다. “공사 부지 일부를 관계자와 협의해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학생들은 설명했다. 높고 넓은 공사벽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포스트잇에는 시민들의 응원과 바람, 그리고 하고 싶던 말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국의 언어가 드문드문 보였다. 시민들의 말은 각기 달랐고 언어 역시 달랐지만 뜻은 같았다. "기억하겠습니다.", “힘을 내.”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맞은편에 있다. 대사관과 소녀상 사이에는 4차선 도로가 있다. 대사관과 가장 가까운 한 차선은 경찰 버스가 자리 잡았다. 나머지 차선에는 짧은 간격으로 차가 지나다녔다. 지나갈 때 마다 차가 만드는 바람이 귀를 스쳤다.

발전기로 전기장판과 멀티탭을 가동한다. 발전기는 기름으로 움직인다. 대사관 옆 주유소는 밤 10시면 영업을 종료해 시간 맞춰 기름을 받아야한다. 발전기와 기름은 시민들의 후원이다.

소녀상 지킴이들은 중간 중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니 몸이 뭉친다.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10시 30분, 자리를 정리했다. 두 명씩 조를 짜 이불을 턴다. 바람 막을 벽도 없는 야외, 차들이 지나가며 먼지들을 옮기기 일쑤다. 요즘처럼 황사와 미세먼지가 가득하면 더욱 고역이다. 목이 간질거렸다. "하룻밤 자고 집에 돌아가 코를 풀면 까만 먼지가 묻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호흡기가 특히 약한 몇몇은 마스크를 쓴다. 그 사이 두 명이 내일의 일정을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은 월요일이었다.

남은 학생들은 바람에 휘날려 위태로운 나비 모양의 포스트잇을 바로 붙인다.

노을이 졌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다 까맣게 물들고 말았다. 별 하나 보기 어려운 서울의 기온도 내려간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원을 그린다.

11시 25분, 경찰 버스의 시동이 꺼졌다. 몇몇은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향한다. 생리현상은 경찰과 대학생을 가리지 않는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옆 건물의 신세를 지거나, 3분을 걸어 공용화장실에 가야 한다. 모두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종종 경찰과 대학생이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경우도 생긴다.

날이 바뀌어 한 주가 새로 시작됐다. 대학생 농성의 날짜도 바뀌었다. 104일 차를 막 맞이했다. 창고에서 침낭을 꺼낸다. 남아 있는 사람은 다섯 명. 다섯 개의 침낭과 그보다 많은 핫팩을 챙겨 바닥에 놓는다. 좁은 판자위에 빼곡히 색색의 침낭이 깔렸다.

처음 농성을 시작했던 지난 겨울은 침낭도 펼 수 없었다. 얇은 비닐로 몸을 덮었다. “침낭을 가져오려하면 경찰이 제지했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항의 끝에 침낭과 판자들이 하나 둘씩 시민의 후원으로 농성장에 들어왔다.

한 학생이 피곤하다며 침낭에 들어가 몸을 누인다. 경찰버스도 모두 불이 꺼졌다. 남아 있는 불빛이라고는 가로등, 그리고 건너편 빌딩의 불빛뿐이다.

잠자리에 들지 않은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나눠 먹으며 추위를 녹인다. 쓰레기는 박스에 모아 버린다. 야식을 다 먹고 난 뒤,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인증샷을 찍어야하기 때문이다. 침낭에 누운 학생들은 팔을 벌려 포즈를 취한다. "거의 매일 '인증샷'을 찍었다."고 학생들은 전한다.

30분이 지나자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소녀상, 그리고 학생들이 뉘인 자리 앞의 도로에는 청소차가 지나갔다.

한 명은 얼굴만 내밀고, 나머지 넷은 얼굴마저 파묻은 채 다음날을 위해 잠이 들었다.


김현곤 기자  journalist@pcu.ac.kr
<저작권자 © 배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현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배재로 155-40 (도마동) 백산관 307호
대표전화 : 042)520-5265~6  |  발행인 : 김영호  |  주간 : 박윤기  |  편집국장 : 류보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영
Copyright © 2019 배재신문. All rights reserved.